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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초상


프레빌 1년 전 잡담 | 반응 : 중립적 | 댓글 1

브뤼셀의 마지막 불꽃


로이 맥브라이드 장군은 벙커의 좁은 창문으로 잿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방금 막 마지막 치장물자들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계획의 수립이 끝난 차였다. 그의 눈가에는 72시간 동안 잠들지 못한 피로가 짙게 배어 있었다. 한때 유럽연합의 심장이었던 브뤼셀은 이제 거대한 무덤과 다름없었다. 그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부두 노동자, 어머니는 간호사였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왕립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NATO군에서 경력을 쌓았다. 절멸전쟁 직전에는 NATO 북부사령부 참모차장이었다. 그의 상관들은 모두 죽었고, 이제 그가 최선임 장교였다.


방사능 측정기가 단조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수치는 여전히 절망적이었지만, 적어도 이제는 즉사 수준은 아니었다. 간신히, 말그대로 정말 한계에 가까울 지경이지만 일단 브뤠셀 전체의 공기정화시스템은 작동은 하고 있었다. 생명체를 품고 키워내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자신의 자손들에게 죽음만을 내리는 가혹한 어머니 대지는 아니었다. 고단하고 지난한 나날이었다. 멸망의 순간에도 자신을 믿고 따라준 시민들과 2연대의 장병에게 방호복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조악한 옷을 입히고는 나가서 죽을때까지 정화하라고 무너진 지휘부에서 명령을 내린 결과였다. 인류 문명이 스스로에게 가한 최후의 일격으로부터 십년. 동방의 어느나라에서는 강산이 바뀔만한 시간이라고 하지만 살아남은 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장군님."


부관 알버트 뤼프케 소령이 커피를 가져왔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직업군인이었다. 가족은 모두 잃었다. 절멸전쟁의 마지막 날, 함부르크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귀쟁이놈들과 난쟁이놈들의 병기가 동시에 작렬한 곳 중 하나였다. 


장군은 커피를 들어올려 한모금 마셨다. 절멸전쟁 이전의 인스턴트 커피였다. 미지근하고 쓴맛이 났지만, 그것은 아마도 세계에 남은 마지막 문명의 사치품 중 하나일 것이다.


"몇 명이나 더 찾았소?"


"어제 17명, 오늘 새벽 6명입니다. 대부분 지하철 역사에 숨어있던 사람들입니다."

23명. 인구 1100만의 도시에서 23명하고도 1만명, 맥브라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벨기에 전역으로 범위를 넓히면 수천 명은 될 것이다. 희망적인 숫자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방송은 계속하고 있나?"


"예, 하지만 응답은..."


침묵이 흘렀다. 맥브라이드는 벽에 걸린 유럽 지도를 바라보았다. 한때 28개국이 하나의 이상을 공유했던 대륙. 이제는 방사능 낙진과 마법 오염으로 뒤덮인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죽을 수는 없는 법이다. 유럽은 죽지 않았다. 상처 입고 피 흘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적어도 로이 맥브라이드라는 사람은 그렇게 믿었다..


"아, 보고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제 구조한 생존자 중 한 명이 의식을 찾았습니다."


“특별히 보고한다면, 일반시민은 아니겠군, 누군가?”


“앙투안 르페르브, 전 EU 집행위원회 사무차장입니다.”


맥브라이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고위 관료라는 직책은 물론 여러가지를 의미할 수 있었다. 리를테면 10년이 지났다곤 했지만 평생을 사무실에서 살아온 이의 행정능력 같은 것이나 아직 남아있을 지 모를 군수창고들-대륙단위 총옥쇄를 각오한답시고 만들었지만 허무하게 세계가 꺼져버리며 방치괸-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가진 정보, 최소한 지금 우리가 왜 이 꼴이 됐는지는 알 수 있는 기회.


“데려오시오”



르페브르는 초췌했다. 한때 브뤼셀의 권력 회랑을 누비며 열두개의 금색별을 묶는 줄 중 하나였던 엘리트 관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의 왼팔은 임시 붕대로 감겨있었고, 눈에는 아직도 공포가 서려있었다.


“르베브르 씨, 당신이 아는 것을 말해주시오. 다른 것들도 좋지만, 우선은 왜 이렇게 됐는지부터”


맥브라이드의 어조는 사무적이었다. 동정은 사치였고, 시간은 귀했다.


“12월 31일… 그날 아침 긴급 각료회의가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영국 수상이 주재했습니다. 안건은…안건은 선제 핵공격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다는 듯 그는 말했다. 키너 소령이 숨을 들이켰다. 맥브라이드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프랑스 대통령이 반대했습니다. 서독 총리는 침묵했고... 그때였습니다. 경보가 울렸죠. 엘프들이 먼저 공격한 겁니다."


르페브르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지옥이었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누군가가 안건을 날치기로 통과시켰고, 핵이 발사되었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비난했고, 명령 체계는 무너졌고... 저는 안전가옥 지하 벙커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서 일주일을 숨어 있었죠."


"다른 고위 인사들은?"


"모르겠습니다. 아마... 아마 대부분..."


르페브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맥브라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들었다.


"쉬시오. 나중에 더 자세히 듣겠소."


르페브르가 나간 후, 맥브라이드의 푸른 눈동자가 뤼프케를 차분히 관찰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혼란스럽습니다, 장군님. 만약 EU 지도부가 정말로..."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야."


맥브라이드는 벽에 걸린 유럽 지도를 바라보았다. 한때 5억이 살던 대륙. 이제는 얼마나 남았을까. 새빨간 햇빛이 집무실의 대리석 벽면에 반사되어 혈색의 그림자들이 춤을 춘다. 5층에서 내려다보는 브뤼셀 시가지는 마치 거대한 맹수의 목구멍 속으로 걸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천장의 깨진 샹들리에의 차가운 빛과 햇빛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물어보는 듯했다. ‘왜 아직도 살아있느냐’라고.


"보고합니다!"


그런 감상에 젖어있을 때 통신병이 뛰어들어왔다. 21살의 벨기에 청년, 마르크 반 담이었다. 징집병으로 복무 중 전쟁을 맞았은 그의 얼굴에는 흥분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파리 방면에서 생존자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암호명 '엘리제'. 프랑스 정부 비상 프로토콜입니다."


맥브라이드는 즉시 통신실로 향했다. 구식 단파 라디오가 간신히 작동하고 있었다. 잡음 속에서 희미하게 프랑스어가 들렸다.


"...엘리제 팰리스... 생존자 약 3천... 자크 르네 시라크 대통령... 응답바람..."


장군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했다. 기억의 파편들을 흝어보며 회상했다. 프랑스 대통령. 절멸전쟁 직전까지 유럽의회에서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던 인물이었다. 유럽통합군을 만들자고 주도한 인물이기도 했다. 신호는 반복되고 있었다. 자동 송신인 듯했다.


"얼마나 멀리 있나?"


"약 320킬로미터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지상 이동은 불가능합니다.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고, 길은 잔해로 막혀있습니다. 게다가..."

반 담이 말을 멈췄다. 맥브라이드가 재촉했다.


"말해."


"정찰대가 남쪽 20킬로미터 지점에서 이상한 것을 봤다고 합니다. 움직이는... 무언가를요."


"무언가?"


"거대한 그림자 같은 것이었답니다. 형체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살아있는 것 같았다고."


침묵이 흘렀다. 절멸전쟁의 마지막 날, 온갖 금기시된 무기들이 사용되었다. 차원을 여는 마법, 현실을 비트는 기술. 그 결과로 무엇이 나타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헬기는?"


"세 대가 작동 가능합니다. UH-60 블랙호크 두 대와 AS532 쿠거 한 대입니다."


"연료는?"


"왕복 비행에 아슬아슬합니다. 


맥브라이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통성. 민주주의의 시대가 끝났다고 해서 권력의 정당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혼란기일수록 정통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특히 구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존재라면 그것은 중요하다 못해 치명적이다.


“준비하시오, 내일 새벽 출발하지.”


"장군님, 혹시 파리에 또 다른 생존자 집단이 있다면..."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다면 우리는 끝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역사는 결단하는 자의 것이야. 망설이는 자는 역사의 각주가 될 뿐이지."


파리로 가는 길

맥브라이드는 12명의 정예 병사들과 함께 탑승했다. 헬기 내부는 조명이 없어 어둡고 습했으며, 의자는 철제였다. 각종 무기들이 벽면에 고정되어 있었고, 탄약상자들이 없는 공간에 어떻게 바닥에 정렬되어 있었다. 


“가는데까지는 두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동안 작전에 대해 설명해주겠다, 제군들, 우리의 임무는 단순하다."


맥브라이드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파리의 프랑스 정부와 접촉하고, 가능하다면 통합 지휘 체계를 구축한다. 하지만 명심하라. 그들이 우호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브라이언 대위가 손을 들었다.


"적대적일 경우의 교전 규칙은?"


"자위권 발동. 하지만 최대한 협상을 시도한다. 우리에게는 적보다 동맹이 더 필요하다."


세 대의 헬기가 이륙했다.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 하지만 동쪽 하늘은 기괴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방사능 구름이 만들어내는 섬뜩한 일출이었다.


맥브라이드는 쿠거의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래로 보이는 브뤼셀의 폐허는 충격적이었다. 그랑플라스는 거대한 분화구가 되어 있었고, 왕궁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EU 본부 건물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장군님, 이것 보십시오."


헬싱키 중위가 태블릿을 건넸다. 방사능 측정 데이터였다.


"남쪽 40킬로미터 지점에 이상 구역이 있습니다. 방사능 수치가 0입니다."


"0? 오류 아닌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무언가가 방사능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불길한 소식이었다. 방사능을 먹고 사는 무언가라니.


"우회한다."


비행 시작 한시간쯤 후, 옛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을 넘어서면서 풍경은 더욱 처참해졌다. 유럽의 정원이라 불리던 벨기에 평원은 이제 잿빛 사막이 되어 있었다. 한때 푸르턴 아르덴 숲은 검은 숯더미가 되어있었고, 군데군데 거대한 분화구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곧 그것들을 뛰어넘는 역겹거고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런 씨….”


조종사의 외침에 모두가 창밖을 보았다. 


"저기 보십시오. 장군님…."


페트로바 대위가 가리킨 곳에는 빈약하지만 무장을 한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씨발 그들은 사람을 구워먹고 있었다.


"교전할까요?"


오브라이언 대위의 질문에 맥브라이드는 안그래도 철제의자라 멀미가 심한데 가까스로 토를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시한다. 우리가 먼저 건드릴 이유는 없어."


"우리의 손이 닿지 않은 생존자들은, 아마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뿐일까요"


키너 소령이 중얼거렸다.


"모르겠소. 하지만 이제 우리가 아는 세계는 끝났다는 증거겠지."


비행을 시작한 지 두 시간. 파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전 8시경이었다. 아니, 파리였던 것이 보였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에펠탑은 중간에서 꺾여 세느강에 처박혀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유리 크레이터가 있었다. 세느강은 기괴한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고, 물 위로는 정체불명의 증기가 피어올랐다.


"엘리제 궁 방향에서 연기가 보입니다."


"살아있다는 신호군."


맥브라이드는 권총을 점검하며 외교관이 될 준비와 정복자가 될 준비를 동시에 했다. 그것이 이 새로운 시대의 규칙이었다.


"엘리제궁 육안확인. 옥상에 프랑스 국기가 걸려 있습니다."


조종사의 보고에 맥브라이드는 안도했다. 적어도 목표는 건재했다.


"착륙 지점은?"


"콩코르드 광장이 가장 안전해 보입니다. 비교적 평탄하고..."


그때였다. 경보음이 울렸다.


"미사일 록온! 회피 기동!"


세 대의 헬기가 급격히 흩어졌다. 대공 미사일이 쿠거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서 쏜 거야?"


"엘리제궁 방향입니다!"


맥브라이드는 즉시 무전을 잡았다.


"엘리제궁, 여기는 브뤼셀의 유럽통합군 잔존병력이다. 공격을 중지하라. 반복한다, 우리는 적이 아니다!"


긴장된 몇 초가 흘렀다. 그리고 응답이 왔다.


"여기는 엘리제궁이다. 신원을 증명하라."


프랑스어였다. 맥브라이드는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나는 콘래드 맥브라이드 유럽통합군 중장이다. 구조신호를 받고 왔다."


또다시 침묵. 그리고...

"착륙을 허가한다. 하지만 무장 병력은 최소화하라."


콩코르드 광장에 착륙한 헬기에서 맥브라이드와 5명의 수행원이 내렸다. 나머지는 헬기에 대기했다.

그들을 맞은 것은 프랑스 공화국 수비대의 잔존 병력이었다. 한때 의장대였던 그들의 제복은 찢어지고 더러워져 있었지만, 여전히 군기는 살아 있었다.


"이쪽으로."


수비대장은 말없이 그들을 안내했다. 엘리제궁으로 가는 길은 처참했다. 거리에는 잔해가 쌓여 있었고, 건물들은 반쯤 무너져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바리케이드였다. 생존자들이 쌓은 듯한 임시 방벽들이 주요 길목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3,412명입니다."


수비대장이 대답했다.


"군인 800, 경찰 300, 나머지는 민간인입니다."


적지 않은 숫자였다. 맥브라이드는 희망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 정도면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들 스스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엘리제 궁의 지하 벙커는 브뤼셀보다 상태가 양호했다. 프랑스의 오랜 핵전쟁 대비 전통이 빛을 발한 것일까.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여전히 강인한 모습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흰머리가 힐긋힐긋 보이긴 하지만 맥브라이드는 그의 눈에서 같은 종류의 피로를 읽을 수 있었다.


70대 후반의 전직 총리이자 파리시장 출신 대통령은 피로해 보였지만 여전히 권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맥브라이드 장군, 먼 길 오셨소."


악수를 나누며 드빌팽이 말했다. 그의 영어는 완벽했다.


"각하,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다행... 그런가요? 때로는 죽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은 창밖을 가리켰다. 폐허가 된 파리가 보였다.


"천 년 역사의 도시가 열흘 만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각하, 과거를 탓할 시간이 없습니다."


장군의 말은 단호했다. 대통령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무엇을 제안하러 오신 겁니까?"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탁자 위에는 시원한 와인이 놓여 있었다. 냉장고는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 있었을텐데 땅에라도 묻어놓은 건지. 아니면 얼마안되는 전기를 여기다가 끌어다 쓴건지, 진실이 무엇이든 참으로 프랑스답다.


"생존자는 몇이나 됩니까?"


"파리 시내에 약 3천. 프랑스 전역으로는... 모르겠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6천 7백만 인구의 나라에서 생존자가 만 명도 안 될 것이라는 암묵적 계산.


"무엇을 원하십니까, 장군?"


대통령의 질문은 직접적이었다. 장군도 돌려 말하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통합이 필요합니다. 브뤼셀과 파리의 생존자를 합치면 약 1만 5천. 이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시작? 무엇을 시작한다는 겁니까?"


프랑스 측 르네 올리 소장의 목소리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재건입니다. 유럽의 재건."

"누구의 지휘 하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맥브라이드는 준비한 답을 내놓았다.


"통합 지휘권입니다."


"사실상 군정이되겠군요, 뭔지는 몰라도 유럽통합군은 당신 휘하에 있는거 같고 브뤼셀에서 여기까지 날아올 수 있을정도의 능력도 되시니”


“그러니, 이 상황에서 월권, 아니 군사 쿠데타를 하시겠다?"


"아닙니다. 하지만 민간 정부가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시라크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탄닌과 완벽하게 조화된 묵직한 바디감이 입안에 퍼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유럽재건위원회를 만들 것입니다. 군과 민간의 통합 기구로. 각하께서 명목상 수반이 되시고, 저는 실무를 맡겠습니다."


"거절한다면?"


맥브라이드는 창밖을 가리켰다. 부서진 파리의 모습이 보였다.


"혼자서 저것을 재건하실 수 있습니까?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민간 정부가..."


"민주주의는 사치라는 말씀이신가요?"


드빌팽이 끼어들었다. 맥브라이드는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하지만 살아남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협상은 세 시간 만에 타결되었다. 드빌팽은 명목상의 프랑스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맥브라이드는 유럽재건위원회 의장 겸 군사령관이 되었다.


3시간의 열띤 토론 끝에 시라크가 제안을 내놓았다.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첫째, 프랑스 주권의 상징적 유지. 국기와 국가는 보존됩니다."


"동의합니다."


"둘째, 1년 내에 민간 정부 복원을 위한 로드맵 작성."


"5년으로 하시죠."


"3년."


"동의합니다."


"셋째, 프랑스군은 독자적 지휘 체계를 유지합니다. 통합은 작전 레벨에서만."


이것은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맥브라이드는 뤼프케와 눈빛을 교환했다.


"대신 모든 작전은 통합사령부의 승인을 받는 것으로."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라크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생존자 구출과 보호, 그리고 유럽의 재건이 최우선입니다. 군사 작전보다도."


"당연합니다."


악수가 오갔다. 유럽재건위원회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알고 있었다.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프랑스 측 생존자들은 이미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외국 군대가 프랑스를 지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장 바티스트 뒤부아 소장은 프랑스 장교들을 소집해 비밀 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는 12명. 모두 프랑스군 중견 장교들이었다.


"뒤부아 장군님, 하지만 대통령께서..."


"대통령은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우리가 약해 보였기 때문이야."


뒤부아는 애국자였다. 생모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외인부대에서 복무한 경력의 소유자. 그에게 프랑스는 모든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젊은 대위가 물었다.


"일단은 기다린다. 놈들의 약점을 찾아내고, 때가 오면..."


한편 맥브라이드는 실무 통합에 착수했다. 하지만 모든 단계에서 마찰이 일어났다.


"왜 영어로 보고서를 써야 합니까? 여기는 프랑스입니다!"


"보급품 분배가 불공평합니다. 브뤼셀 병사들이 더 많이 받고 있어요!"


"우리 부대를 왜 독일놈 밑에 배치합니까?"


사소한 불만들이 쌓여갔다. 맥브라이드는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해결했지만, 밑바닥의 불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뒤부아가 이의를 제기하면 맥브라이드는 차갑게 대답했다.


"소장, 이제 프랑스도 벨기에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살아남은 인류뿐입니다."


"그래도..."


"모든 자원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재건에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재벌들과 협상도 진행하고 있고요 협력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고립되시겠습니까? 합의가 이뤄진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파기할 수 있을 겁니다.


"재벌이요? 이 세계에 그런게 남아있습니까?”


맥브라이드는 재벌을 생각하더니 표정을 조금 찡그리며 대답했다.

“놀랍게도요, 정말 맨땅에서 다시 사업을 일구었더군요, 다루기 힘들지만, 전쟁이전의 기술을 대부분 유지시켰습니다. 참 대단한 놈들이죠. 첨언드리자면 은행놈들도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뒤부아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맥브라이드는 알고 있었다. 이런 불만이 쌓이면 언젠가는 폭발한다는 것을.


"힘든 길이 될 것입니다."


시라크가 조용히 말했다.


"쉬운 길이었다면 인류가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겠죠."


맥브라이드는 일어섰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통신망 복구, 생존자 수색, 자원 확보, 경제 재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생존자 집단과의 접촉.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완전히 기대를 저버렸다는 뜻이다. 생물로서, 이웃으로서, 가족으로서, 국가로서 예상되는 행동들, 움직이고, 싸우고, 대화하고, 그런 것들을 이제 다신 못할 거라 생각되는 상태를 죽음이라 부르는 것이다. 유럽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적어도 로이 맥브라이드라는 사람은 그렇게 기대했다

댓글 [ 1 ]

  아리스들어올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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