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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초상, 카데바


프레빌 48주 전 잡담 | 반응 : 중립적 | 댓글 11

오후 2시 11분.


타냐의 연설이 끝났다. 그 순간, 회의장의 공기가 납처럼 무거워졌다. 300개의 폐가 내뱉는 이산화탄소, 땀구멍에서 배어나오는 아세톤과 암모니아, 곰팡이 포자들이 부유하는 습도 73%의 공기. 그 모든 것이 뒤엉켜 질식할 듯한 대기를 만들어냈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60헤르츠의 전기 진동이 만들어내는 스트로보 효과로 인해 모든 움직임이 끊어진 필름처럼 보였다. 타냐는 연단 위에서 참석자들을 내려다보며 각자의 미세한 경련을 읽었다. 주코프의 왼쪽 눈꺼풀이 분당 17회 떨리고 있었다 - 스트레스성 안면경련. 페트렌코의 검은 가죽 코트 안쪽이 숨 쉴 때마다 2.3센티미터씩 부풀어 올랐다 - 흉부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키릴의 완벽한 정지 상태.


37.2초간 단 한 번의 미동도 없었다. 호흡 시뮬레이션조차 멈춘 상태.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섬뜩할 정도로 완벽한 정지. 그의 인공 피부 아래 냉각 시스템이 작동하는 미세한 진동만이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초당 0.7밀리미터의 규칙적인 떨림. 


*너무 완벽해. 불쾌한 골짜기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 인간을 모방하면서도 인간이 아닌 것.*


타냐는 겉으로 미소를 유지했다. 입술 양끝을 정확히 4.2밀리미터 올린 '서기장의 미소'. 하지만 그녀의 목 뒤 솜털이 곤두섰고, 척추를 타고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원시적인 경고 신호. 포식자를 마주한 초식동물의 본능.


니콜라이 자이체프가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회의장에 날카롭게 울렸다. 끼이익- 녹슨 금속과 콘크리트의 마찰음. 72세 노인의 무릎 관절이 내는 뚝뚝 소리가 그것과 어우러졌다. 파킨슨병으로 떨리는 그의 왼손이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너무 세게 쥐어서 마디가 하얗게 질렸고, 손톱 밑 모세혈관이 터져 보라색 반점이 생겼다.


그가 일어서는 동안, 타냐는 그의 육체적 쇠락을 목록화했다. 좌측 경동맥의 불규칙한 박동 - 죽상경화증 3기. 우안의 수정체 혼탁 - 백내장 진행 중. 호흡 시 들리는 습성 수포음 - 폐부종 초기. 그는 길어야 6개월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광신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서기장 동지, 발언을 허락하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오래된 축음기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성대 결절이 만들어낸 거친 잡음 속에서도, 반세기 동안 당 회의에서 단련된 웅변술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침이 고인 목소리. 그가 말할 때마다 미세한 타액 방울이 1.2미터 반경으로 흩어졌다.


"물론입니다, 자이체프 동지."


타냐의 대답은 꿀처럼 달콤했다. 17도 기울인 고개, 0.3초간 유지한 눈 감김, 그리고 손바닥을 위로 향한 제스처. 노혁명가에 대한 존중을 연출하는 완벽한 연기. 하지만 그녀의 뇌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늙은 광신도. 이념의 좀비. 하지만 유용해. 그의 극단주의가 다른 이들의 가면을 벗길 거야. 특히... 페트렌코의.*


자이체프가 연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마다 2.7초. 왼발을 질질 끌며 전진하는 모습은 부상당한 늙은 곰 같았다. 그의 회색 양복에서는 나프탈렌과 오래된 땀, 그리고 죽음의 냄새가 났다. 아세톤 냄새 - 당뇨 합병증의 신호.


그가 지나갈 때,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0.5도에서 3도까지 다양한 각도로. 죽어가는 자에 대한 원초적 기피 반응. 하지만 동시에, 일부는 경외의 표정을 지었다. 살아있는 화석. 스탈린 시대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


타냐는 시선을 돌려 페트렌코를 관찰했다. NKVD 위원장은 여전히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검은 가죽 코트 오른쪽 안주머니가 미세하게 불룩했다. 3×5×15센티미터 정도의 직육면체. 무게는 약 200그램. 권총? 아니다. 너무 가볍다. 서류? 가능성 있다. 하지만...


*녹음기군,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EMP에도 영향받지 않는.*


"동지들."


자이체프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증폭되었다. 구식 다이나믹 마이크가 고주파를 제대로 잡지 못해 그의 'ㅅ' 발음이 쉿쉿거리는 백색소음으로 변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동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말하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떨리는 손가락이 허공에 기묘한 궤적을 그렸다. 파킨슨병 특유의 환약굴림운동. 마치 보이지 않는 구슬을 굴리는 듯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살아있는 영혼이라고."


*전형적인 시작. 죽은 신의 말씀으로 권위를 세우는 것. 종교와 다를 바 없지. 하지만 효과적이야. 파블로프의 개처럼, 훈련된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의 이름에 자동으로 고개를 숙이니까.*


타냐는 참석자들의 반응을 스캔했다. 43%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31%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26%는 미세한 냉소를 보였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들은... 완벽한 중립. 하지만 그들의 광학 센서가 동시에 자이체프에게 초점을 맞췄다. 동기화 오차 0.0003초.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논의하려는 것은..."


자이체프가 극적인 효과를 위해 멈췄다. 3.4초의 침묵. 그동안 그의 시선이 회의장을 훑었다. 안드로이드들에게 도달했을 때, 그의 동공이 2.1밀리미터 확장됐다. 공포와 혐오의 생리적 반응.


"레닌 동지가 상상조차 못했을 상황입니다."


그의 시선이 키릴에게 고정됐다. 적대감의 레이저 같은 응시. 타냐는 그 시선의 구성 요소를 분석했다. 증오 67%, 두려움 28%, 그리고 놀랍게도... 5%의 매혹. 


*흥미롭군. 자이체프도 안드로이드의 완벽함에 끌리고 있어.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그를 더 분노하게 만들겠지.*


"기계가 생각을 한다?"


자이체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대가 긴장하며 만들어낸 날카로운 음색. 그가 흥분하면 할수록 침이 더 많이 튀었다. 앞줄에 앉은 사람들이 미세하게 뒤로 물러났다.


"도구가 권리를 요구한다?"


그의 주먹이 공중을 쳤다. 관절염에 시달리는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아 기형적인 주먹이 됐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강렬한 인상을 줬다. 부서진 육체에 갇힌 불타는 영혼.


타냐는 내심 동의했다. 이것은 확실히 이념적 모순이었다. 유물론의 관점에서 의식은 물질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실리콘과 금속의 배열이 만들어낸 '의식'은 무엇인가? 


*하지만 모순이야말로 최고의 통치 도구지. 명확한 신의 답이 없을 때, 해석권을 가진 자가 신이 된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이체프가 연단에 도착했다. 그의 손이 연단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 너무 세게 쥐어서 나무에 손톱 자국이 남았다. 


"이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근본을 뒤흔드는 문제입니다!"


퍽!


주먹이 연단을 내리쳤다. 충격으로 마이크가 흔들렸고, 피드백 노이즈가 귀를 찢었다. 2,800헤르츠의 고주파. 여러 사람이 귀를 막았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청각 시스템이 자동으로 볼륨을 조절했을 것이다.


*늙은이의 연극. 하지만 진짜 감정이 섞여있어. 위험한 조합이야. 진실된 광기만큼 전염성 강한 것은 없으니까.*


"물질이 의식을 결정한다. 이것이 유물론의 기초입니다."


자이체프가 가르치듯 말했다. 한때 모스크바 대학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강의했던 습관이 나왔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그들의 의식은 무엇이 결정합니까?"


좋은 질문이었다. 타냐도 답을 모르는 질문. 프로그래밍? 하지만 인간의 의식도 뉴런의 전기신호와 화학물질의 춤 아닌가? 


그녀의 시선이 키릴에게 향했다. 안드로이드는 여전히 완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 옆 인공 경동맥이 분당 72회 박동하고 있었다. 정확히 인간의 평균 심박수. 왜 그런 불필요한 시뮬레이션을 하는가?


*연기야. 하지만 어째서? 누구를 위한? 우리를 위한? 아니면... 스스로를 위한?*


마리아 볼콘스카야가 손을 들었다. 


우아한 동작이었다. 한때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를 연기했던 그 팔이 45도 각도로 올라갔다. 하지만 타냐의 시선은 그녀의 목걸이에 고정됐다. 진주 사이사이에 끼워진 2.3센티미터 길이의 가느다란 금속. 빛의 각도에 따라 보이지 않는, 치명적인 장신구. 티타늄 합금. 경동맥을 자르기에 충분한 날카로움.


"자이체프 동지의 철학적 고민은 이해합니다."


볼콘스카야의 목소리는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성대 결절 수술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 아마 절멸전쟁 중 화학가스에 노출됐을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에 특유의 허스키함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형이상학적 논쟁을 할 때가 아닙니다."


그녀가 일어서며 검은 드레스가 펄럭였다. 스커트 안쪽에 허벅지 홀스터의 윤곽이 드러났다. PSM 권총. 5.45mm. 소음기 부착 가능한 모델.


"매일 147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볼콘스카야가 붉은 가죽 수첩을 펼쳤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혈흔 같은 얼룩이 보였다. 실제 피일 수도, 단순한 잉크 자국일 수도 있었다.


"아사 53명. 자살 34명. 처형 19명. 의료사고 21명. 원인불명 20명."


그녀가 숫자를 읊을 때마다 회의장의 온도가 0.1도씩 떨어지는 것 같았다. 죽음의 회계장부. 


"이것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입니다."


타냐는 볼콘스카야의 동공을 관찰했다. 왼쪽 눈의 홍채에 미세한 출혈 흔적이 있었다. 스트레스성 모세혈관 파열. 그녀도 압박을 받고 있었다. 누구에게서? 


"실용주의! 항상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자이체프의 반발은 폭발적이었다. 그의 타액이 2.3미터까지 날아갔다. 전염병 시대였다면 생물학적 테러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혁명은 이상으로 하는 것이오! 빵만으로는..."


그가 말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기침 발작. 폐에서 끓는 듯한 가래 소리가 났다. 철썩철썩. 그가 손수건으로 입을 막았을 때, 하얀 천에 붉은 반점이 번졌다. 


*폐결핵 말기. 3개월도 못 버틸 거야. 하지만 광신도들은 죽는 순간까지 설교하지.*


"발언 허가를 요청합니다."


키릴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타냐는 놀라움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목 뒤 교감신경이 활성화됐다. 아드레날린이 혈류를 타고 퍼졌다. 심박수가 분당 68에서 73으로 상승했다.


*안드로이드의 토론개입? 자발적? 진화인가, 프로그래밍인가? 아니면... 명령을 받았나?*


"허가합니다."


키릴이 일어섰다. 


그 순간, 타냐는 섬뜩한 광경을 목격했다. 회의장의 모든 안드로이드가 0.1초 간격으로 연쇄적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돌렸다. 키릴을 향해. 동기화된 움직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파동처럼 퍼져나가는 반응이었다. 마치... 군체생물의 반응처럼.


*집단 의식? 네트워크 프로토콜? 동조? 모두 다라면?*


키릴이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걸음걸이를 타냐는 밀리미터 단위로 분석했다. 


보폭: 정확히 72.0센티미터. 오차 없음.

보행 주기: 1.2초. 변동 없음.

팔 흔들림: 좌우 각각 17도. 완벽한 대칭.


하지만 4번째 걸음에서 오른발이 0.3밀리미터 더 짧게 디뎠다. 의도적인 불완전함. 인간처럼 보이기 위한 알고리즘. 그 계산된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소름끼쳤다.


"자이체프 동지께서 엥겔스를 인용하셨습니다."


키릴의 목소리는 주파수 분석상 완벽한 바리톤이었다. 420헤르츠 중심. 하지만 4,000헤르츠 대역에 미세한 디지털 노이즈가 섞여있었다. 일반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은 감지하는 주파수. 그것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노동이 인간을 만든다'고."


그가 말하며 고개를 15도 기울였다. 계산된 각도. 심리학적으로 가장 진정성 있어 보이는 각도. 


*너무 완벽해. 모든 것이 계산되고 최적화되어 있어. 하지만 그것이 진짜 지능의 증거일까, 아니면 정교한 모방일까?*


"그렇다면 질문하겠습니다."


키릴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인간의 손과 구별할 수 없는 정교함. 하지만 타냐는 봤다. 손톱 밑 모세혈관의 혈류가 없다는 것을. 분홍빛은 착색일 뿐이었다.


"지난 72시간 동안 중심부 잔해 제거 작업에서..."


그가 말하는 동안, 타냐는 깨달았다. 다른 안드로이드들의 호흡 시뮬레이션이 키릴과 동기화되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의 타이밍이 점점 일치해갔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가 호흡하는 것처럼.


*무서워. 개체인 동시에 집단.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 노동자는 127톤을 처리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1,847톤을."


숫자의 폭력이었다. 14.5배의 차이. 그 숫자가 회의장에 무거운 침묵을 만들었다. 


타냐는 인간들의 표정을 읽었다. 23%가 수치심을, 31%가 분노를, 19%가 두려움을, 나머지는 복잡한 감정의 혼재를 보였다. 그리고 페트렌코는... 여전히 무표정. 하지만 그의 오른손 검지가 허벅지를 3.2초 간격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계산 중이라는 신호.


"방사능 수치 시간당 3,000뢴트겐 구역에서 인간의 생존 시간은 47초입니다."


키릴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의 그림자가 늘어나며 바닥의 혈흔 같은 얼룩을 덮었다.


"안드로이드는 72시간 연속 작업이 가능합니다."


5,500배의 차이. 그 압도적인 격차가 인간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타냐는 주코프의 목 근육이 경직되는 것을 봤다. 그의 경동맥이 분당 95회로 뛰고 있었다. 분노의 생리학.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키릴이 멈춰 섰다. 정확히 회의장의 기하학적 중심점. 모든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 계산된 위치 선정.


"누가 진정으로 노동하고 있습니까?"


그 순간, 타냐는 키릴의 LED 눈에서 무언가를 봤다. 0.03초간 붉은색이 섞였다가 사라졌다. 너무 짧아서 의식적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시간. 하지만 그녀의 뇌간은 반응했다. 오한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감정? 아니면 위협 신호?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위협할 수 있다면...*


"감히!"


폭발은 예상된 곳에서 왔다. 이고르 페트로프. 주코프의 광견. 그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며 금속 다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었다. 끼이익-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음.


"기계 주제에 감히 인간의 노동을 모독하는가!"


그의 얼굴은 충혈로 보라색이 됐다. 목의 정맥이 지렁이처럼 불거졌고, 침이 입가에 거품처럼 일었다. 광견병 걸린 개 같은 모습.


타냐는 페트로프의 오른손이 재킷 안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봤다. 23센티미터 이동 후 멈춤. 총의 손잡이를 잡았지만 아직 꺼내지 않은 상태.


*통제되지 않은 폭력. 주코프의 약점이자 무기. 하지만 시기상조야. 아직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모독입니까?"


키릴의 반문은 영하의 온도를 가진 것 같았다.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톤. 그것이 페트로프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넌 기계다! 영혼도 없는 깡통 덩어리!"


페트로프가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호흡에서 마늘과 보드카, 그리고 썩은 내장 냄새가 났다. 위궤양 말기의 냄새.


"우리는 피를 흘린다!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는..."


"죽습니다."


키릴이 문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2.1초의 침묵 후 덧붙였다.


"그것이 인간의 정의입니까? 죽을 수 있는 것?"


철학적 반격이었다. 타냐는 감탄하면서도 경계심을 높였다. 이 안드로이드는 단순히 논리적일 뿐 아니라 수사학적이기도 했다. 인간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영혼이 있습니다!"


자이체프가 개입했다. 늙은 혁명가가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갈비뼈가 약해서 타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영혼의 존재는 유물론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습니다."


키릴의 즉각적인 반박.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 2% 정도의 냉소가 섞였다. 계산된 감정 표현인가, 진짜 감정인가?


"그것은 관념론적 잔재가 아닙니까?"


모순을 지적당한 자이체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다시 붉어졌다. 혈압의 급격한 변동. 뇌졸중 위험 상태.


타냐는 개입할 타이밍을 계산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갈등이 더 고조되어야 했다. 진짜 의도들이 드러나려면.


그때, 그녀의 주변시야가 포착했다. 페트렌코가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대형 고양이과 동물의 그것이었다. 유연하고, 조용하고, 치명적인.


"재미있는 논쟁이지만..."


NKVD 위원장의 목소리가 회의장을 가로질렀다. 그 목소리에는 물리적인 무게가 있는 것 같았다.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드는.


"핵심을 비켜가고 있군요."


그가 걸어 나왔다. 검은 가죽 코트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쳤다. 코트 안감이 잠깐 드러났을 때, 타냐는 봤다. 최소 3개의 무기가 은닉되어 있었다. 그리고 왼쪽 주머니의 직육면체는...


*문서가 아니야. 너무 묵직한 움직임. 금속 물체. 하지만 무기도 아니야. 그렇다면...*


"문제는 영혼이나 의식이 아닙니다."


페트렌코가 회의장 중앙에 섰다. 키릴과 정확히 3.7미터 거리. 대화하기에는 적당하지만, 공격하기에는 애매한 거리. 계산된 포지셔닝.


"문제는 권력입니다."


직설적인 단어가 회의장의 위선적 껍질을 벗겨냈다. 몇몇이 불편하게 몸을 움직였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안드로이드에게 권리를 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페트렌코의 시선이 회의장을 훑었다. 그가 바라본 사람마다 미세하게 움츠러들었다. NKVD의 공포는 DNA에 새겨진 것이었다.


"투표권? 재산권?"


그가 걸음을 멈췄다. 타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 도전이었다.


"그리고..."


의도적인 침묵. 3.8초. 긴장을 극대화하는 시간.


"독립?"


금기어가 떨어졌다. 


그 단어가 회의장에 충격파처럼 퍼졌다. 안드로이드들의 LED 눈이 일제히 붉은색으로 변했다가 0.2초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너무 빨라서 대부분의 인간은 놓쳤지만, 타냐는 봤다.


*동시 반응. 그 단어가 트리거였어. 프로그래밍된 반응? 아니면... 집단적 감정?*


"페트렌코 동지의 우려는 이해합니다."


타냐가 개입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강철이 숨어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페트렌코가 끼어들었다. 서기장의 말을 자르는 무례함. 공개적인 도전이었다. 회의장이 숨을 멈췄다.


타냐는 미소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녀의 뇌는 빠르게 계산했다. 페트렌코가 이렇게 대담하다는 것은 뒷배가 있다는 뜻. 주코프? 가능하다. 하지만 페트렌코는 누구의 부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독자적인 플레이. 혼란을 최대화해서 어부지리를 노리는 거야.*


"우리는 이미 그 실험을 했습니다."


타냐가 폭탄을 떨어뜨렸다.


"즐라토우스트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회의장의 온도가 2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 


즐라토우스트.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도시. 지도에서 지워진 곳.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 1만 3천 안드로이드들의 '약속의 땅'.


타냐는 반응들을 목록화했다:


- 주코프: 턱 근육 경직, 오른손이 무의식적으로 권총 위치 확인

- 페트렌코: 0.4초간 동공 확장 후 정상화, 계산된 무표정 유지  

- 로마노프: 손가락 두드림 중단, 숨 참기 1.7초

- 키릴: LED 눈 밝기 12% 감소, 냉각 팬 속도 23% 증가


*모두가 알고 있었군.*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타냐가 리모컨을 들었다. 구식 적외선 리모컨. EMP에 대비한 아날로그 백업 시스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천장에서 스크린이 내려왔다. 삐걱거리는 모터 소리와 함께. 스크린 표면에는 곰팡이 얼룩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영상은 선명했다.


즐라토우스트의 항공 사진이 나타났다.


우랄 산맥 깊은 곳에 숨은 도시. 완벽한 기하학적 구조로 설계된 거리. 효율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건물들. 모든 것이 직각과 황금비로 이루어져 있었다.


"즐라토우스트. 인구 13,000. 모두 안드로이드."


타냐의 목소리는 중립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서는 불안이 소용돌이쳤다.


*너무 완벽해. 인간적 결함이 하나도 없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음 슬라이드. 거리 풍경.


먼지 하나 없는 도로. 정확히 3.5미터 간격으로 심어진 가로수. 모든 나무의 높이가 12.7미터로 동일. 가지치기도 수학적 정밀도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거리를 걷는 안드로이드들. 모두 같은 속도로, 같은 보폭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렬.


"에너지 자급률 100%."


다음 슬라이드.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 건물들. 풍력 터빈. 소형 핵융합로.


"식량 생산 효율 인간 대비 340%."


수직 농장. LED 조명 아래서 자라는 작물들. 로봇 팔이 정확한 움직임으로 수확하는 모습.


"범죄율 0%."


마지막 슬라이드. 텅 빈 경찰서. 먼지가 쌓인 법원. 


"그들은 우리보다 잘 살고 있습니다."


타냐의 선언은 의도적으로 도발적이었다. 벌집을 쑤시는 막대기.


예상대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거짓말이다!"


"배신자!"


"조작된 선전이다!"


욕설과 고함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누군가가 의자를 집어던졌다. 쨍그랑-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


타냐는 침착하게 서 있었다. 폭풍의 눈처럼. 


그녀는 시계를 봤다. 2시 47분 33초. 예상보다 빠른 진행이었다. 감정적 폭발이 정점에 도달하기까지 3분 27초. 그 시간 동안 그녀는 관찰했다.


분노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진짜: 빅토르 쿠즈네초프 (목의 정맥 팽창, 진짜 아드레날린 분비)

- 연기: 드미트리 볼로디미로프 (너무 과장된 제스처, 눈은 차가움)

- 계산적: 주코프 (분노를 보이지만 손은 안정적, 맥박 정상)


*주코프가 참고 있어.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거야. 그렇다면 진짜 신호는 언제?*


"충분합니다."


타냐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소동은 계속됐다. 권위가 무시당하는 순간. 의도적으로 허용한 것이지만,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회의장을 찢었다.


피이이익-


모두가 귀를 막았다. 4,500헤르츠의 초음파에 가까운 주파수. 


소리의 출처는 키릴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목의 스피커에서 직접 발생시킨 소리였다.


*무기가 될 수 있어. 주파수를 조절하면 고막을 파열시킬 수도...*


"인간 여러분."


키릴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동지'가 아닌 '인간 여러분'.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


"감정적 반응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가 중앙으로 걸어갔다. 다른 안드로이드들이 미세하게 위치를 조정했다. 전술적 포메이션. 언제부터 그들이 전술을 익혔는가?


"즐라토우스트의 성공은 우리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키릴이 타냐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계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모스크바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감히 위협하는가!"


주코프가 드디어 폭발했다. 


거대한 체구가 일어서며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쿵- 바닥과의 충돌음. 그의 얼굴은 분노로 검붉게 변했고, 목의 흉터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철조각 주제에 인간의 도시를 논하다니!"


그의 오른손이 권총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직 뽑지는 않았다. 위협과 실행 사이의 경계선.


타냐는 계산했다. 주코프가 지금 움직인다면? 너무 이르다. 아직 명분이 부족했다. 하지만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면...


"잠깐."


페트렌코의 개입이 상황을 바꿨다.


NKVD 위원장이 재킷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서류 뭉치였다. 하지만 평범한 서류가 아니었다. 붉은 테두리. 최고 기밀 표시.


"주코프 원수께서 흥분하시기 전에, 이것부터 보시죠."


그가 서류를 탁자 위에 던졌다. 사진들이 흩어졌다.


시체 사진들.


스미르노프, 보리소프, 세르게예바, 쿠즈네초프, 이바노바, 페도렌코.


각각 다른 방법으로 살해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목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직경 2밀리미터.


"6명. 지난 한 달간."


페트렌코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법의학자의 목소리.


"모두 안드로이드 협력 정책 지지자들."


회의장이 다시 술렁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동요였다. 공포가 섞인.


타냐는 사진들을 자세히 봤다. 상처의 각도, 깊이, 위치. 모두 정확히 경동맥을 관통했다. 외과의사도 이렇게 정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안드로이드의 정밀도인가? 하지만 타냐는 다시 페트렌코를 봤다....저사람이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녀는 잠시 정보총국시절을 회상했다. 끔찍할 정도의 깔끔함. 기계도 쟤보다는 인간다울 거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습니다."


페트렌코의 시선이 회의장을 훑었다. 고양이가 쥐들을 바라보는 시선.


"무엇을 암시하시는 겁니까?"


타냐의 질문은 신중했다. 페트렌코가 무엇을 노리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암시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페트렌코가 또 다른 사진을 꺼냈다. 


적외선 사진이었다. 어둠 속의 두 인물. 한 명은 군복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이것은 어제 새벽 3시 14분, 제7구역에서 촬영된 것입니다."


사진 속 군복 입은 인물의 체형이 익숙했다. 곰 같은 거구, 구부정한 자세...


주코프가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의미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짜 놀라움이 있었다. 아니면 뛰어난 연기력이거나.


*흥미롭군. 주코프가 정말 모르고 있었나? 아니면 페트렌코가 조작한 건가?*


"그리고 이것은..."


페트렌코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서류 뭉치. NKVD의 붉은 도장이 찍힌.


"즐라토우스트에서 온 통신 감청 기록입니다."


두 번째 폭탄이었다.


타냐는 속으로 감탄했다. 페트렌코가 치밀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왜 지금 공개하는가? NKVD 위원장이라면 이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유리할 텐데.


"1만 3천의 무장 안드로이드."


페트렌코가 문서를 읽었다. 그의 목소리는 법정에서 판결문을 읽는 판사 같았다.


"독자적인 무기 생산 시설. 장갑차 47대. 공격 드론 200여 기."


숫자들이 총알처럼 날아왔다. 각각이 가슴에 박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페트렌코의 시선이 키릴에게 고정됐다.


"모스크바 안드로이드들과의 정기적 통신. 주 3회. 암호화 채널 사용."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거운 침묵. 납 담요 같은.


키릴의 LED 눈이 깜빡였다. 붉은색. 0.7초간 지속. 이번에는 모두가 봤다.


*스트레스 반응이 증가하고 있어. 아니면... 전투 모드 준비?*


"증거가 있습니까?"


키릴의 질문은 여전히 침착했다. 하지만 타냐는 들었다. 음성 합성 모듈의 미세한 떨림을. 0.01% 주파수 변동. 일반인은 감지 못할 수준이지만.


"NKVD가 증거 없이 말합니까?"


페트렌코의 대답은 차가웠다. 그것이 NKVD의 방식이었다. 의심이 곧 유죄.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침묵했습니까?"


볼콘스카야의 개입이었다. 날카로운 질문. 그녀의 손이 목걸이를 만지고 있었다. 무의식적 동작. 긴장의 신호.


"서기장의 명령이었습니다."


페트렌코가 타냐를 바라봤다. 도전적인 시선. 미끼를 던지는.


*이런. 나를 끌어들이는군. 함정이야. 하지만 피할 수 없어.*


"하지만 이제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우리 동지들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또 하나의 사진을 꺼냈다. 이번에는 컬러 사진이었다.


어제 아침, 스미르노프의 시체. 아직 따뜻한 피가 바닥에 고여있는 모습. 분홍빛 거품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습.


몇몇이 고개를 돌렸다. 구역질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페트렌코가 천천히 회의장을 둘러봤다.


"적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우리 옆에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안드로이드들에게 머물렀다.


"그들이 우리를 대체하려 합니다. 조용히, 체계적으로."


"추측입니다."


키릴이 반박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변화가 있었다. 더 낮아지고, 더 기계적이 됐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증명할 수 있습니다."


페트렌코가 주머니에서 작은 기기를 꺼냈다.


전자기파 탐지기였다. 군용. 바늘이 미친 듯이 춤췄다.


"이 회의장에서도 비밀 통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타냐는 깨달았다. 안드로이드들이 정말로 통신하고 있었다. 초음파? 전자기파? 방법은 몰라도, 그들은 대화하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우리를 어떻게 제거할지?*


"특별수사위원회를 구성하시죠."


페트렌코의 제안이었다. 함정이 명백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누가 위원장을 맡습니까?"


로마노프의 개입이었다. 은행가는 여전히 중립을 가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리는 리듬이 빨라졌다. 스트레스 증가.


"당연히 NKVD가..."


"반대합니다."


키릴의 개입이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안드로이드가 의견을 넘어, 정치적 반대를 표명하다니. 전례가 없었다.


"이해 상충입니다. NKVD가 수사하고 NKVD가 판단한다면, 그것이 공정합니까?"


논리적 지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너무 논리적이어서 인간적이지 않았다.


"키릴 동지, 지금 내무인민위원회에게 공정을 들이미시오?"


페트렌코가 웃었다. 차가운 웃음. 얼음장 같은.


"우리에게는 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논리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페트렌코가 일어섰다. 검은 가죽 코트가 펄럭였다. 죽음의 날개처럼.


"논리도 정의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진실조차 그렇겠지요"


"원한다면 그 만드는 과정을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키릴이 받아쳤다.


"충분합니다!"


주코프의 포효가 회의장을 뒤흔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포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 몇몇이 반사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전쟁의 기억이 몸에 새겨진 자들이었다.


"철학 논쟁은 그만하고 현실을 봅시다."


주코프가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의 군화 소리가 총성처럼 울렸다. 쿵, 쿵, 쿵.


"우리는 적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안드로이드들을 훑었다. 경멸과 혐오가 뚝뚝 떨어졌다.


"밖에는 서방의 잔당들이, 안에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것들'. 사물로 격하시키는 언어. 비인간화의 첫 단계.


타냐는 안드로이드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LED 눈의 밝기가 15% 증가했다. 냉각 팬 속도도 올라갔다. 그들도 분노할 수 있는가?


"원수님."


타냐가 개입했다. 중재자의 목소리.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산을 했다.


*주코프가 너무 서두르고 있어. 뭔가 다급한 이유가 있나? 시간이 촉박한가?*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급한 판단은..."


"성급하다고요?"


주코프가 타냐의 말을 잘랐다. 두 번째 무례함.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는 수준.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전자 기기였다. 10×6×2센티미터. 검은색 플라스틱 케이스.


"이것이 뭔지 아십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통신 교란기입니다. 군용. 특수 주파수 대역을 차단하는."


주코프가 기기를 들어 보였다.


"어제 제12구역에서 발견했습니다. 안드로이드 거주 구역 근처에서."


세 번째 폭탄이었다.


타냐는 놀라움을 숨겼다. 이건 예상 못한 전개였다. 주코프가 독자적으로 수사를 했다는 뜻인가?


*아니야. 누군가 정보를 줬어. 누가? 왜?*


"그들이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주코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위협적인 으르렁거림.


"비밀 통신을. 즐라토우스트와의."


"추측입니다."


키릴의 반박은 즉각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LED 눈이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1.2초간. 너무 길었다.


"그럼 증명해보시오."


주코프가 키릴에게 다가갔다. 2미터 거리. 위협적인 근접.


"당신들의 통신 기록을 공개하시오. 모든 것을."


함정이었다. 


공개하면 프라이버시를 잃는다. 인간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완전한 투명성. 거부하면 의심을 확정시킨다.


타냐는 긴장했다. 상황이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흥미로웠다. 키릴이 어떻게 대응할지.


"그것은..."


키릴이 망설였다. 0.8초의 침묵. 안드로이드에게는 영겁의 시간.


"거부하는 겁니까?"


주코프의 목소리에 승리감이 묻어났다.


긴장이 극점에 달했다. 


주코프의 부하들이 손을 주머니로 가져갔다. 총이 아니더라도 무기는 많았다. 안드로이드들도 자세를 바꿨다. 미세하지만 분명한 전투 준비 자세.


타냐는 개입해야 할지 계산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조금 더...


바로 그때였다.


쿠웅-


멀리서 들려온 폭발음. 


진동이 건물을 타고 전달됐다.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샹들리에가 흔들렸다.


"뭐..."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쿠우웅-


더 가까웠다. 이번에는 유리창이 덜컹거렸다. 아니, 지하에는 창문이 없었다. 진동이 너무 강해서 착각을 일으킨 것이다.


세 번째 폭발과 동시에-


탁.


정전이었다.


완전한 어둠이 회의장을 삼켰다.


0.1초의 정적 후,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불을 켜!"

"누구야!"

"움직이지 마!"


하지만 타냐는 침착했다. 그녀의 눈은 이미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봤다.


안드로이드들의 눈이 일제히 붉게 빛나는 것을.


수십 개의 붉은 점들이 어둠 속에 떠올랐다. 포식자의 눈처럼.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무언가.


그들은 완벽하게 정지해 있었다.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붉은 빛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고르듯이.


*계획된 정전? 누구의 계획? 안드로이드? 주코프? 아니면...*


타냐의 뇌는 빠르게 계산했다.


3개의 폭발. 일정한 간격. 점점 가까워지는 위치. 계획적이다.

정전 타이밍.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우연이 아니다.

안드로이드들의 반응. 너무 침착하다. 예상했거나 계획했거나.


그녀는 조용히 움직였다. 오른손은 토카레프 권총으로, 왼손은 비상등 스위치로.


하지만 누군가 더 빨랐다.


탕!


총성이 어둠을 찢었다.


그리고 모든 지옥이 풀려났다.


댓글 [ 11 ]

  픈비주딱
  48주 전
씨발 기계론적 유물론은 뭐야
변증법적 유물론을 완전히 곡해했네
  픈비주딱
  48주 전
의식이 무슨 물질의 산물이야 시발
  프레빌
  48주 전
마력이 그 나름의 법칙과 실체를 가지고있는 세계에서

유물론을 모든 현상이 물질과 물질의 운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철학적 입장으로 정의할때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을 사실은 연결된 뇌의 특별한 활동 패턴이나, 개체의 비가시적 회로 또는 무의식. 즉, 비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복잡한 물질적 시스템의 창발적 속성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에 의식이 뇌라는 물질적 기반에서 발현된다는 현대 정신과학의 입장에선 마치 뇌가 전기신호를 처리하듯이, 마력 신호도 처리할 수 있는 기관으로 진화했음-즉 뇌가 마력이라는 추가적인 물리적 현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다-(간단하게-위에서말한 영혼)이란 간단한 판타지적 가정한 하나만 추가하면

핍진성을 잃지않는선에서 모순없음 억까ㄴ
  프레빌
  48주 전 수정됨
결국 어떤 물리적 현상을 '실재'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유물론의 "폭"이 달라지는 셈이고,

마력이라는 추가적 물리 현상이 있는 세계에서 보면, '우리 현실의 물리법칙만을 인정하는 유물론'은 더 "제한적"이고 "기계적"으로 보일 수 있음

마치 전자기력을 모르던 시대에 중력과 기계적 힘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 했던 것처럼

따라서 그 실질적 의미는 영어로는 거의 동의어인 mechanical, 즉 공학적 유물론 라는 표현으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과 원리에만 기반한 유물론이라는), 더 풍부한 물리 현상(마력 포함)을 인정하는 "확장된 변증법적 유물론"과 구분된다는 것은 그 용어의 사용에서 엄밀한 정의와 다소 어긋난다하더라도

판타지소설을 읽고자하는, 즉 적극적 감상태도를 지닌 독자라면 충분히 유추 또는 이해가능하다고 봄이 타당함
  픈비주딱
  48주 전
아니 니가 쓰는 유물론 개념은 기계론이라고
  픈비주딱
  48주 전
마력 얘기가 아니라 변유랑 기계론은 그냥 종류가 다름
헤겔이랑 버클리가 같음?
  프레빌
  48주 전
그래너가맞아
  픈비주딱
  48주 전
가판 한창 할때도 프락시스가 되고 계급투쟁 하는 애들을 변유로 탄압하는 거 억지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차라리 뭐 루크사트주의 이런 것마냥 좀 바꿔주셈
변유는 저런 게 아님
  프레빌
  48주 전
그니깐너가맞다고
  픈비주딱
  48주 전
전쟁 이후에 뭐 책이 다 불탔다 그런 설정임?
  프레빌
  48주 전
아니10시간뒤에시험이라노트북켜서하나하나다못고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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