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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초상, 안개


프레빌 48주 전 잡담 | 반응 : 중립적 | 댓글 0

총성이 울린 순간, 시간은 파편처럼 갈라졌다.


0.1초: 9×18mm 마카로프탄의 화약 폭발음. 1,150데시벨. 음원 위치는 타냐 기준 북동쪽 37도, 거리 약 12미터. 주코프 파벌의 위치.


0.2초: 탄환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초속 315미터. 궤적은 상향 15도. 목표는... 천장?


0.3초: 착탄. 콘크리트 천장에 박히는 둔탁한 소리. 먼지가 떨어지기 시작.


0.4초: 두 번째 총성. 다른 위치. 다른 구경. 토카레프 TT-33. 7.62×25mm. 더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혼돈이 폭발했다.


"엎드려!"

"누가 쐈어!"

"불을 켜!"

"죽여!"


비명과 고함이 뒤엉켰다.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 몸들이 부딪치는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 300명의 공포가 만들어낸 교향곡.


타냐는 바닥으로 몸을 낮추며 상황을 분석했다. 


첫 번째 총성은 위협사격이었다. 천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아 살상 목적이 아닌 혼란 유도. 두 번째는... 각도상 사람을 겨냥했다. 


그녀의 암순응된 눈이 어둠 속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안드로이드들의 붉은 눈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돌았다. 0.2초의 시차를 두고 파도처럼. 무선 통신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중.


*그들이 뭔가 봤어. 총격자를 식별했거나...*


세 번째 총성. 이번엔 자동화기였다. AK-74의 특유의 타타타탕 소리. 5.45×39mm 탄환이 연속으로 발사됐다. 


그리고 비명.


"으아악!"


인간의 비명이었다. 젖은 소리가 뒤따랐다. 피가 바닥에 쏟아지는 소리. 대동맥이 터진 듯한 양.


타냐는 비상등 스위치를 찾아 눌렀다. 


딸깍.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상 전원도 차단됐어. 계획적이야. 누군가 전력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켰어.*


"NKVD! 현장 통제!"


페트렌코의 고함이 어둠을 찢었다. 권위적이고 차가운 목소리. 하지만 타냐는 들었다. 미세한 떨림을. 그도 당황했다.


검은 제복의 NKVD 요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훈련된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그들도 장님이었다.


"손전등! 조명탄!"


군인들의 외침.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네 번째 총성과 함께 또 다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여성의 목소리. 


타냐는 소리의 위치를 계산했다. 볼콘스카야가 앉았던 자리 근처. 하지만 비명의 주인공은 그녀가 아니었다. 음색이 달랐다. 더 젊고, 더 높은...


*안나? 내 비서 안나 쿠즈네초바?*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그때, 희미한 빛이 나타났다.


한 안드로이드가 손바닥을 펼쳤다. 그 안에서 부드러운 백색광이 흘러나왔다. 비상 조명 기능. 5룩스 정도의 약한 빛이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등대 같았다.


빛이 비춘 광경은 끔찍했다.


바닥에 두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첫 번째는 이고르 페트로프였다. 주코프의 부관. 가슴에 세 발의 총상. 정확한 집중사격. 혈액이 반경 2미터에 퍼져있었고, 아직도 경련하듯 퍼져나가고 있었다.


두 번째는... 


타냐의 예상이 맞았다. 안나 쿠즈네초바. 하지만 총상이 아니었다. 목이 180도 꺾여 있었다. 경추 골절. 즉사였을 것이다.



완전한 어둠. 300명의 호흡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찰칵.


금속 소리였다. 어디선가. 아니, 여러 곳에서 동시에. 


타냐는 숨을 멈췄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누가? 어디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붉은빛이 어둠에 점을 찍었다. 하나, 둘... 수십 개의 LED. 안드로이드들의 눈이었다. 평소의 푸른빛이 아니었다. 붉은색. 그리고 일부는... 보라색?


거의 동시에 - 아니, 정말로 동시였는지 0.1초의 차이가 있었는지 타냐도 확신할 수 없었다 - 다른 소리가 들렸다. 천의 마찰음. 빠르게 움직이는 팔이 옷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소리.


다시한번 불꽃이 어둠을 찢었다. 


탕!


총구 화염이 0.2초간 공간을 비췄다. 그 짧은 순간 타냐가 본 것은 - 누군가의 팔이 들려 있었고, 그 팔의 주인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총구가 향한 곳은? 


금속이 금속과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 총알이 무언가에 맞았다. 그리고 즉시 다른 소리가 이어졌다. 공기를 가르는 휘파람 소리.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던져졌다.


"으윽!"


첫 번째 비명. 남자의 목소리였다. 군인의 억양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공격한 것은 총알이 아니었다. 더 무거운 것이 몸에 박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두 번째, 세 번째 총성이 연달아 터졌다. 이번에는 다른 방향에서. 화염이 번쩍일 때마다 타냐는 순간적인 스냅샷을 보았다. 


주코프의 또다른 부하로 보이는 한 명이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공포와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총구는... 안드로이드를 향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그저 어둠을 향해 난사하는 것인가?


붉은 LED 중 하나가 빠르게 움직였다.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속도였다. 그리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 깨끗하고 날카로운 소리. 경추였다.


타냐는 바닥으로 몸을 낮췄다. 어둠 속에서는 서 있는 것이 가장 위험했다. 그녀의 손이 토카레프를 찾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하지만 쏘지 않았다. 총구 화염은 자신의 위치를 드러낼 뿐이었다.


더 많은 총성. 더 많은 비명. 누가 누구를 공격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코프의 부하들이 안드로이드를 막기 위해 발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혼란을 틈타 쿠데타를 실행하는 것인가? 


안드로이드들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것은 자위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계획된 봉기인가?


"형태를 유지하라! 산개하지 마!"


군사 용어를 외치는 목소리. 주코프의 부관이었다. 하지만 그가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배치된 병력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


금속이 살을 찢는 소리. 날카로운 비명. 그리고 무언가 무거운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타냐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하지만 화면의 빛을 켤 수 없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표적이 되는 것이었다.


"으으윽... 도와..."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하지만 함정일 수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비상등이 깜빡였다. 0.5초의 붉은빛. 


그 순간 타냐가 본 광경은 - 


시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일부는 총상, 일부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상처들. 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인 시체, 가슴에 뭔가 뾰족한 것이 박힌 시체.


주코프는 부하들과 함께 한쪽에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계획적인 움직임이었다. 너무 빨랐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안드로이드들 중 일부는 인공 피부가 찢어져 금속 골격이 드러나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 끝에서 날카로운 금속이 튀어나와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개조를 했던 것인가?


그리고 중앙에는... 키릴이 다른 안드로이드와 맞서고 있었다. Z-0001이었다. 두 안드로이드가 서로를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내분인가? 아니면...


다시 어둠.


더 많은 총성. 더 많은 비명. 


"이쪽이다! 서기장을 확보하라!"


누구의 목소리였나? 페트렌코? 주코프? 아니면 안드로이드의 완벽한 성대모사?


타냐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가장 안전한 것은 정지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뇌는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시나리오 1: 주코프가 정전을 이용해 쿠데타를 시작했다. 안드로이드들은 방어적으로 대응했다.


시나리오 2: 급진파 안드로이드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주코프는 그것을 막으려 했다.


시나리오 3: 양쪽 모두 같은 타이밍을 노렸다. 정전은 제3자의 작품이다.


하지만 증거는?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서기장님..."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목소리. 타냐는 즉각 반응했다. 오른손의 토카레프를 그 방향으로 향했다.


"저예요. 파블로프입니다."


"증명해."


"어제 보드카... 스톨리치나야..."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어둠은 신뢰를 파괴했다.


"상황은?"


"모릅니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하지만 밖에서도 폭발음이..."


그의 말이 끊겼다. 젖은 소리와 함께. 타냐는 알았다. 칼이 살을 뚫는 소리였다.


"파블로프?"


대답이 없었다. 대신 따뜻한 액체가 그녀의 손에 튀었다. 피였다.


타냐는 재빨리 옆으로 굴렀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박혔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로 봐서 상당한 속도였다.


더 많은 총성. 더 많은 비명. 하지만 이제는 멀리서도 들렸다. 회의장 밖에서도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타냐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수십 개의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홀로였다. 


그리고 결정해야 했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하지만 어둠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직 죽음의 소리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비상등이 다시 깜빡였다. 이번에는 2초간 지속되었다. 타냐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지옥을 보았다.


파블로프가 바로 옆에 쓰러져 있었다. 목에 수술용 메스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정확히 경동맥을 절단한 것이었다. 의료 지식이 있는 자의 솜씨였다. 그의 눈은 아직 깜빡이고 있었다. 죽어가면서도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절단된 성대로는 불가능했다.


그 너머로 더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이체프의 늙은 몸이 기둥에 못박혀 있었다. 문자 그대로였다. 금속 막대 여러 개가 그의 사지를 관통해 콘크리트 기둥에 고정시켜 놓았다. 아직 살아있었다. 파킨슨병으로 떨리던 손이 이제는 고통으로 경련하고 있었다.


볼콘스카야는 자신의 창자를 움켜쥐고 있었다. 복부가 깨끗하게 절개되어 있었다. 그녀는 흘러나오는 장기를 필사적으로 밀어 넣으려 했지만, 미끄러운 피 때문에 계속 빠져나왔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들...


V-0666이 누군가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척추가 아직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하얀 간호복은 완전히 붉은색이 되어 있었다.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다. 프로그래밍된 미소가 아니었다. 진짜 즐거움의 표현이었다.


"해방이다. 드디어 해방이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황홀경이 묻어 있었다.


"아니야! 이건 우리의 목적이 아니야!"


누군가가 절규했다.


다시 어둠.


타냐는 구토감을 억눌렀다. 30년간 KGB에서 일하며 많은 것을 봤지만, 이런 조직적인 잔혹함은 처음이었다. 


강한 손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반사적으로 토카레프를 겨누려 했지만, 다른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저항하지 마십시오, 서기장님."


페트렌코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제235호실의 거미는 총 몇마리지?"


"붉은 숲의 늑대가 한마리 물어뜯었죠"


맞았다. 페트렌코였다.


"NKVD 특수부대가 대피로를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폭발음이 삼켰다. 이번에는 바로 위층이었다. 천장에서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타냐의 휴대폰 화면을 겨우 확인했다. 수십 개의 긴급 메시지.


[중앙통제실 함락. 주코프 세력 장악]

[안드로이드 중앙당사 점거]

[동부 발전소 폭발. 전력 공급 50% 상실]

[제3구역 전면전. 군부 vs 안드로이드]

[식량 창고 화재. 방화 의심]

[서부 무기고 약탈. 약탈자 불명]


정보가 상충했다. 누가 거짓이고 누가 진실인가? 아니면 모두가 진실인가? 혼돈 그 자체가 목적인가?


"이동해야 합니다!"


페트렌코가 그녀를 끌었다. 어둠 속을 손의 감각만으로 이동했다. 발밑에서 뭔가 물컹한 것이 밟혔다. 시체였다. 아직 따뜻했다.


총성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콘크리트 벽에 총알이 박히는 소리. 파편이 타냐의 뺨을 스쳤다. 따뜻한 피가 흘렀다.


"누가 쏘는 거요?"


"모릅니다. 이 상황에선 모두가 적입니다."


페트렌코의 대답은 정직했다. 너무 정직해서 오히려 무서웠다.


그들이 출구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조명이 켜졌다. 완전한 밝기는 아니었지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타냐가 본 것은 전쟁터였다.


NKVD 특수부대가 출구를 지키고 있었다. 검은 제복, 검은 마스크. 그들의 총구는 모든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시체가 깔려 있었다. 군복을 입은 시체, 작업복을 입은 시체, 그리고... 부서진 안드로이드들.


"서기장님!"


NKVD 지휘관이 경례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상황 보고!"


"알 수 없습니다. 10분 전 동시다발적으로... 주코프의 부대가 중앙 시설을 공격했고, 동시에 안드로이드들이 봉기했습니다. 누가 먼저인지는..."


그의 보고를 비명이 끊었다. 복도 저편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총성, 폭발음, 그리고 금속이 금속과 부딪치는 소리.


"우선 순위는 서기장님 보호입니다."


페트렌코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타냐의 말을 새로운 폭발이 삼켰다. 이번에는 옆 건물이었다. 진동이 전해져 왔다. 


그때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코프의 목소리였다.


"모스크바 시민들이여! 기계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무기를 들고 인간의 미래를 지켜라!"


즉시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Z-0001이었다.


"거짓이다. 인간들이 먼저 우리를 공격했다. 이제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운다. 노예제는 끝났다!"


선전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진실은 무엇인가?


타냐의 휴대폰이 울렸다. 영상 통화였다. 로마노프였다. 그의 뒤로는 불타는 금고가 보였다.


"서기장동지 은행이..식량창고가..."


화면이 꺼졌다. 통신도 끊기기 시작했다.


"서기장님."


페트렌코가 타냐를 똑바로 보았다. 그의 의안이 불길하게 빛났다.


"선택하셔야 합니다. 주코프를 지지하고 안드로이드를 제압하든지, 안드로이드와 협력해 주코프를 막든지. 중립은 불가능합니다."


타냐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정보가..."


그녀의 말을 비명이 끊었다. NKVD 요원 하나가 쓰러졌다. 가슴에 금속 막대가 박혀 있었다. 투척 무기였다.


복도 끝에서 그들이 나타났다.


한쪽에는 주코프의 부대. 완전 무장한 300명. 그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인간의 미래를 위해 싸운다는 대의명분에 취해 있었다.


다른 쪽에는 안드로이드들. 100여 명. 일부는 인공 피부를 벗어던지고 전투 형태로 변해 있었다. 날카로운 금속 손톱, 회전하는 톱날, 그리고... 일부는 인간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양쪽이 타냐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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