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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초상, 무덤


프레빌 45주 전 잡담 | 반응 : 중립적 | 댓글 4

 대강당까지는 평소라면 15분 거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모든 통로가 죽음의 미로가 되어 있었다. 한때는 형광등이 환하게 비추던 복도들이 이제는 깜빡이는 비상등의 희미한 붉은빛에 의존해야 했다. 그 붉은빛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명멸했고, 그때마다 복도의 참상이 스트로보처럼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테카트가 앞장섰다. 그의 걸음은 느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때는 뉴틀란트의 통치자로서 당당했던 그의 어깨가 이제는 무거운 짐에 짓눌린 듯 구부러져 있었다. 방호복의 관절 부분은 삐걱거렸고, 헬멧의 필터는 거친 숨소리를 증폭시켰다. 뒤를 따르는 10명의 평의원들은 마치 장례 행렬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럴지도 몰랐다. 그들 자신의 장례식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금속 바닥을 두드릴 때마다 텅 빈 복도에 메아리가 울렸고, 그 소리는 마치 종소리처럼 음울했다.



B구역을 지날 때였다.


복도 양쪽으로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니,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뼈만 남은 몸에 헐렁한 옷이 걸쳐져 있었고, 그 옷들은 한때는 뉴틀란트 시민복이었지만 이제는 누더기에 가까웠다. 파란색이었던 작업복은 때와 피, 그리고 알 수 없는 체액들로 얼룩져 거의 검은색이 되어 있었다. 눈구멍은 깊숙이 패여 있었고, 그 안의 눈동자는 생기를 잃어 마치 죽은 물고기의 눈처럼 탁했다. 영양실조 말기 환자들이었다. 광대뼈는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었고, 입술은 말라 갈라져 있었으며, 잇몸은 괴혈병으로 검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먹을... 것..."


누군가 손을 뻗었다. 손가락은 나뭇가지처럼 마르고 구부러져 있었다. 피부는 양피지처럼 얇아서 그 아래 힘줄과 뼈의 움직임이 그대로 보였다. 손톱은 빠져 있었고, 그 자리에는 검은 고름이 맺혀 있었다. 손목에는 한때 시계를 차고 있었을 자국이 있었지만, 시계는 이미 오래전에 식량과 바꾸었을 것이다. 팔뚝에는 혈관이 푸르스름하게 도드라져 있었고, 그 혈관들은 너무 가늘어서 언제 끊어질지 모를 실처럼 보였다.


"제발... 조금만..."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성대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듯했다. 쉰 목소리라기보다는 바람이 새는 소리에 가까웠다. 입에서는 썩은 내가 났다. 치아는 대부분 빠져 있었고, 남은 것들도 흔들리고 있었다. 혀는 부어올라 있었고, 입천장에는 하얀 반점들이 번져 있었다. 구강 칸디다증이었다. 면역력이 바닥난 증거였다.


테카트는 고개를 돌렸다. 헬멧의 바이저 너머로 그의 눈이 잠시 그들과 마주쳤다가 이내 피했다. 그에게는 줄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평의회가 비축한 식량도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앞으로의 보급도 불투명했다. 그의 주머니에는 비상용 영양바 하나가 있었지만, 그것을 꺼내는 순간 폭동이 일어날 것이었다.


행렬이 지나가자 몇몇이 따라왔다. 처음에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뼈만 남은 다리가 제대로 힘을 받치지 못해 마치 꺾인 나뭇가지처럼 휘청거렸다. 발목은 부어올라 있었고, 무릎에는 체액이 고여 있었다. 걷다가 쓰러지고, 쓰러진 자리에서 기어가려 했다. 손바닥과 무릎으로 차가운 금속 바닥을 긁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그 속도는 너무나 느렸다. 기어가다가 멈추고, 결국은 복도에 널브러졌다. 마지막 힘을 다해 손을 뻗은 채로. 뒤를 돌아본 라그나가 중얼거렸다.


"3시간 안에 시체가 될 거야. 아니, 어쩌면 1시간일지도."


"알아." 테카트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이 배제된 기계음처럼 들렸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들을 도우면 우리도 같이 죽을 뿐이야."


복도의 공기는 탁했다. 환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공기 중에는 부패한 냄새와 오줌 냄새, 그리고 절망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악취가 아니었다. 인간의 존엄이 무너진 냄새였다. 희망이 썩어가는 냄새였다.



C구역의 거주 블록을 지났다. 


한때는 가족 단위 거주자들을 위한 안락한 공간이었다. 각 호실마다 작은 정원이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도 있었다. 이제 그 정원에는 시체가 묻혀 있었고, 놀이터의 그네에는 목을 맨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네는 삐걱거리며 흔들렸고, 시체도 함께 춤을 췄다.


문들은 대부분 닫혀 있었지만, 안에서 나는 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울음소리가 있었다. 아이의 울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이미 울 힘조차 없었다. 어른들의 울음이었다. 낮고 절망적인 신음에 가까운 울음. 그리고 기도 소리가 있었다. 누군가는 신에게, 누군가는 악마에게, 누군가는 그저 누구에게라도 구원을 청하고 있었다. 어떤 문 밑으로는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피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액체는 복도의 미세한 경사를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고,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에는 파리가 윙윙거렸다. 이 지하 도시에 파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미스터리였다.


3B-27호실 앞을 지날 때,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문틈으로 희미한 촛불 빛이 새어 나왔다. 전기가 끊긴 지 오래된 구역에서 촛불은 귀중품이었다. 그런데도 켜두었다는 것은... 데카트는 호기심에 이끌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안을 들여다본 그는 숨을 멈췄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맙소사... 오 신이시여..."


방 안에는 가족이 있었다. 아니, 있었던 흔적이 있었다. 


식탁은 놀랍도록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저녁 식사를 준비하듯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하얀 식탁보는 얼룩 하나 없이 깨끗했고, 그 위에는 네 명분의 식기가 놓여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는 반듯하게 놓여 있었고, 접시는 정중앙에 배치되어 있었다. 물컵에는 심지어 물도 담겨 있었다. 탁한 물이었지만.


하지만 의자에는 세 구의 시체만 있었다. 두 명은 어른이었다. 남자와 여자, 아마도 부부였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은 채 죽어 있었다. 죽은 지 며칠은 된 듯했다. 피부는 창백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잠든 것처럼.


세 번째 시체는 아이였다. 열 살쯤 되어 보였다. 소녀였다. 긴 머리는 정성스럽게 빗어 두 갈래로 땋아져 있었다. 분홍색 리본이 묶여 있었다. 드레스도 입고 있었다. 아마도 가장 좋은 옷을 입힌 것이리라. 소녀의 손에는 인형이 쥐어져 있었다. 낡은 토끼 인형이었다.


네 번째 의자는 비어 있었고, 그 앞의 접시에는...


접시는 비어 있지 않았다.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붉은 무언가가. 그리고 그것은... 작은 뼈들이 보였다. 너무나 작은...


"가지 마." 닐슨이 데카트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아귀는 단단했다. "봐서 좋을 건 없어. 이미 늦었어."


하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접시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 왜 네 번째 가족이 보이지 않는지. 아마도 막내였을 것이다. 가장 작고 연약했을...


라그나가 구역질을 했다. 헬멧을 벗으려 했지만 역시 닐슨이 막았다.


"참아. 여기서 벗으면 감염될 수 있어."


그녀는 헬멧 안에서 토했다. 신물과 담즙이 올라왔다. 이미 위에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헬멧 안이 더러워졌지만 그녀는 참아야 했다. 숨을 쉴 때마다 토사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D구역으로 향하는 중앙 계단에 도착했다.


한때는 뉴틀란트의 자랑이었다. 건축학적 걸작이라 불렸다. 나선형으로 설계된 5층 높이의 대계단은 마치 거대한 DNA 이중나선을 연상시켰다. 스테인리스 난간은 유려한 곡선을 그렸고,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은 거울처럼 빛났었다. 천장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고, 크리스털이 빛을 받아 무지개를 만들어냈었다. 비상시 대피로이자 평시에는 중앙 광장의 역할을 했던 곳.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던 곳. 아이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놀던 곳.


이제는 난민촌이 되어 있었다. 아니, 난민촌이라는 말도 너무 고상했다. 인간 쓰레기장에 가까웠다.


계단참마다, 난간 옆마다, 심지어 계단 자체에도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빼곡하게, 정어리 통조림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담요 대신 신문지와 비닐을 덮고 있었고,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에 의존하고 있었다. 베개 대신 신발이나 가방을 베고 있었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의 다리를 베고 있었다. 계층도 질서도 없었다. 모두가 평등하게 비참했다.


공기는 탁했다. 아니, 탁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공기는 걸쭉했다. 눈에 보일 정도로 탁했다. 수백 명의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었고, 환기는 전혀 되지 않았다. 땀 냄새가 가장 먼저 코를 찔렀다. 오래된 땀, 마른 땀, 공포의 땀이 뒤섞인 냄새. 그다음은 오줌 냄새였다. 화장실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해결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대변 냄새도 났다. 어떤 이는 설사를 했고, 그것은 계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부패하기 시작한 상처에서 나는 달콤하면서도 역겨운 냄새가 있었다. 괴저의 냄새였다. 치료받지 못한 상처가 썩어가는 냄새. 살이 죽어가는 냄새. 그 냄새는 너무나 진해서 거의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환기가 되지 않아 이산화탄소 농도는 위험 수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벌린 채 헐떡이고 있었다. 마치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어떤 이들은 이미 의식을 잃었고, 어떤 이들은 잃어가고 있었다. 입술이 파랗게 질린 사람들이 있었다. 청색증이었다. 산소 부족의 증거였다.


"지나가겠습니다."


테카트가 말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 약했고, 너무 빽빽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다. 발을 디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한 발 잘못 디디면 누군가의 손이나 얼굴을 밟을 수 있었다. 실제로 올라프가 실수로 누군가의 손가락을 밟았다. 으드득 소리가 났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손의 주인은 신음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의식이 없었거나, 고통을 느낄 힘조차 없었던 것이다.


계단을 오르며 그들이 본 것들:


한 노인이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가슴이 오르내리지 않았다. 죽은 지 몇 시간은 된 듯했다. 그의 옆에는 손자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차가운 손을 잡고 있었다. 언제 깨어날지 기다리는 듯했다.


한 여자가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기는 울지 않았다. 너무 조용했다. 여자는 계속 아기를 흔들었다.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십대로 보이는 소년이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팔에는 이상한 상처들이 있었다. 물린 자국이었다. 사람이 문 자국. 자기 자신이 문 것이었다. 배고픔을 참기 위해, 아니면 고통을 잊기 위해.


2층 계단참에서 한 여자가 테카트의 바지를 잡았다.


손은 뼈만 남았지만 힘은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절망이 주는 힘이었다. 손톱은 길게 자라 있었고, 그 밑에는 때가 껴 있었다. 손목의 혈관이 도드라져 보였다.


"제... 제 아이가..."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듯했다. 입술은 하얗게 말라 있었고, 갈라진 틈으로 피가 배어 나왔다.


그녀가 품에 안은 것을 보여주었다.


아기였다. 아니, 아기였던 것이었다. 너무 작았다. 신생아보다도 작았다. 영양실조로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이다.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투명했다. 혈관이 파랗게 비쳐 보였다. 너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입술도, 손톱도, 발톱도 모두 파란색이었다. 숨을 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쉬지 않고 있었다. 가슴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목의 맥박도 뛰지 않았다.


"이미..." 마르타가 말하려 했지만, 여자가 소리쳤다.


"아니에요! 자고 있을 뿐이에요! 깨우면 안 돼요! 조용히 해주세요! 제발, 제발 조용히..."


그녀의 눈은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광기. 진실을 마주하면 무너질 것을 아는 영혼의 최후의 방어 기제. 눈동자는 확장되어 있었고, 흰자위에는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그녀는 아기를 더 꽉 안았다. 아기의 머리가 축 늘어졌다. 목이 부러진 듯했다. 이미 시체 경직이 시작되어 몸은 뻣뻣했다.


테카트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풀었다.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그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는 힘을 뺐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풀어내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관절이 굳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시 아기를 품에 안고 흔들며 자장가를 불렀다. 음정은 맞지 않았고, 가사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같은 소절을 계속 반복했다.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자장자장..."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녀도 곧 아기를 따라갈 것 같았다.


3층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남자가 무언가를 놓고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한때는 건장했을 법한 체구였지만 이제는 뼈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싸움은 치열했다. 생존이 걸린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지켜보거나 아예 등을 돌리고 있었다. 힘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개입할 이유도 없었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눈을 찌르려 했다. 손가락이 눈구멍을 향했다. 다른 남자는 이를 물었다. 피가 났다. 첫 번째 남자가 비명을 질렀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그들이 서로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뽑혔다. 두피에서 피가 났다. 그들은 구르고 뒹굴었다. 누워 있던 사람들 위로 굴렀지만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들이 싸우는 이유가 보였다.


쥐였다. 


죽은 쥐. 변이체가 아닌 보통 쥐였지만, 그것도 비쩍 말라 있었다. 뉴틀란트의 쥐들도 굶주리고 있었다. 죽은 지 며칠은 된 것 같았다. 털은 빠져 있었고, 피부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배는 부풀어 있었다. 부패 가스 때문이었다. 구더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얗고 통통한 구더기들이 썩은 살을 파먹고 있었다.


"내가 먼저 봤어! 내가 먼저 봤다고!"


한 남자가 소리쳤다. 이가 거의 다 빠져서 발음이 부정확했다.


"거짓말! 내가 잡았다고! 내 손에 있었어!"


다른 남자가 반박했다. 그의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방금 전 싸움에서 입술을 물어뜯긴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할퀴고 물어뜯으며 쥐를 차지하려 했다. 손톱으로 뺨을 긁어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피가 났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피 냄새가 그들을 더욱 광폭하게 만들었다.


"놔! 내 거야!"


"죽여버릴 거야! 놓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야!"


위협은 공허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럴 의도가 보였다. 눈에는 살의가 가득했다.


결국 쥐가 둘로 찢어졌다.


퍽.


작은 소리와 함께 쥐의 몸통이 갈라졌다. 내장이 쏟아졌다. 썩은 내장이었다. 검은색과 녹색이 뒤섞인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악취가 퍼졌다. 하수구와 시체를 섞은 듯한 냄새였다. 


그러나 두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각자 쥐의 반쪽을 움켜쥐고 황급히 입으로 가져갔다. 씹지도 않고 삼켰다. 목구멍으로 넘기려 애썼다. 한 남자는 쥐의 머리 부분을 먹었다. 두개골이 으드득 소리를 내며 깨졌다. 다른 남자는 꼬리 부분을 먹었다. 내장을 손으로 훑어 입에 넣었다.


"이런 지옥..." 구나르가 중얼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지옥..."




4층에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곳은 원래 의료 구역과 가까웠다. 병들고 다친 사람들이 치료를 받으러 오다가 쓰러진 곳이었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누군가 기어간 흔적이었다. 손바닥 자국과 무릎 자국이 피로 찍혀 있었다. 그 흔적은 의료 구역으로 향했지만, 중간에 멈춰 있었다. 흔적의 끝에는 시체가 있었다.


벽에는 손자국이 가득했다. 피 묻은 손자국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다가 미끄러진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일어서려 했지만 실패한 것이었다. 손톱으로 벽을 긁은 자국도 있었다. 마지막 순간의 발악이었을 것이다.


천장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똑. 똑. 똑.


액체였다. 붉은 액체. 위층에서 새어 내려오는 것이었다. 5층은 이미...


"올라가야 해." 테카트가 말했다. "대강당은 5층이야."


모두가 주저했다. 5층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계단은 더욱 좁아졌다. 사람들이 더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구별이 점점 어려워졌다. 어떤 이는 죽은 사람을 베개 삼아 누워 있었고, 어떤 이는 시체와 포옹한 채 있었다. 따뜻함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홀름크비스트의 휠체어가 시체에 걸렸다.


"밀어줘." 그가 요청했다.


올라프와 라그나가 휠체어를 들어 올렸다. 시체 위로 지나가야 했다. 바퀴가 시체의 배를 눌렀다. 푹 꺼졌다. 가스가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악취가 더욱 진해졌다.


5층 계단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산이었다. 계단을 완전히 막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맨 아래에는 오래된 시체들이 있었다. 백골에 가까웠다. 그 위에 좀 더 최근의 시체들이 쌓였다. 층층이, 지층처럼.


시체들의 자세가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일부는 대강당 문을 향해 손을 뻗은 채 죽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들어가려 했던 것이다. 일부는 서로를 밟고 올라가려다 죽었다. 서로 엉켜 있었다. 일부는 포기한 듯 웅크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일부는 다른 시체를 먹다가 죽은 것 같았다. 입 주변에 검붉은 자국이 있었고, 손에는 사람의 살점이 있었다.


"이걸 어떻게..." 마르타가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치워야지." 테카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어."




시체를 치우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하나하나 옮겨야 했다. 시체는 무거웠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들은 물렁했고, 오래된 것들은 부서졌다. 뼈가 바스러지고, 살이 떨어져 나갔다. 


그들의 장갑은 금세 더러워졌다. 피와 고름과 썩은 체액으로 미끌거렸다. 악취는 헬멧의 필터로도 막을 수 없었다. 구역질이 계속 올라왔다.


마침내 E구역 복도에 들어섰다.


복도 양쪽으로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여기는 체계가 있었다. 누군가 정리를 시도한 흔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리를 했을 것이다. 가지런히 눕히고, 눈을 감기고, 수의 대신 천이라도 덮어주었을 것이다. 벽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름표도 사라졌다. 시체가 너무 많아진 것이다. 


그다음에는 천도 사라졌다. 덮어줄 천이 떨어진 것이다.


그다음에는 가지런히 눕히는 것도 멈췄다. 그냥 쌓았다. 


이제는 그냥 버렸다. 시체들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마치 쓰레기 더미처럼.


일부는 앉은 채로 죽어 있었다. 벽에 기댄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고, 입은 벌린 채였다. 마지막 숨을 들이쉬려다 멈춘 것 같았다. 


일부는 기어가다가 죽었다. 바닥에 엎드린 채였다. 손톱에는 바닥을 긁은 흔적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것이다.


일부는 선 채로 죽어 있었다. 시체 경직으로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마치 조각상 같았다. 끔찍한 조각상.


그리고 냄새.


부패의 단계별 냄새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갓 죽은 시체의 쇠 냄새가 있었다. 피 냄새와 비슷하지만 더 진한 냄새. 


며칠 된 시체의 달콤한 냄새가 있었다. 과일이 썩는 것 같은, 그러나 더 역겨운 냄새. 


일주일이 넘은 시체의 암모니아 냄새가 있었다. 코를 찌르는, 눈이 따가운 냄새.


그리고 그보다 오래된 것들의... 형용할 수 없는 냄새. 모든 악취가 뒤섞여 화학 반응을 일으킨 듯한 냄새. 


공기 자체가 독이 된 것 같았다.


더 끔찍한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이었다.


시체들 사이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너무 약해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은 시체들 사이에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는 이미 시체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피부는 시체처럼 창백했고, 눈은 시체처럼 흐릿했다. 숨만 겨우 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숨소리도 가래가 끓는 소리였다. 죽음의 숨소리였다.


어떤 이는 시체를 먹고 있었다.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대놓고, 아무렇지 않게, 시체의 살을 뜯어먹고 있었다. 


한 남자는 팔뚝을 뜯어먹고 있었다. 이가 없어서 잇몸으로 뜯었다. 피가 났지만 그의 피인지 시체의 피인지 알 수 없었다.


한 여자는 허벅지 살을 먹고 있었다. 작은 조각으로 뜯어서 오래 씹었다. 마치 질긴 고기를 씹듯이.


아이도 있었다. 


어른의 시체 옆에 앉아 있었다. 아마도 부모였을 것이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그저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시체를 흔들었다. 깨우려는 듯이.


"도와... 주세요..."


시체 더미 아래에서 손이 뻗어 나왔다. 창백하고 뼈만 남은 손이었다. 손가락은 부러진 나뭇가지 같았다. 


홀름크비스트가 휠체어를 멈췄다. 그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우리가... 우리가 뭔가 해야..."


"안 돼." 닐슨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 명을 도우면 모두가 달려들 거야. 우리는 대강당에 가야 해. 그게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야."


손은 계속 흔들렸다. 애원하듯이, 절망적으로. 그리고 다른 손들도 하나둘 올라왔다. 시체 더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뒤엉킨 그로테스크한 덩어리가 움직였다. 마치 거대한 괴물의 내장 같았다.


더 많은 손이 올라왔다. 수십 개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도움을 구하는 손, 음식을 구하는 손, 그저 인간의 온기를 구하는 손.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배고파요..."


"아파요..."


목소리들이 겹쳤다. 개별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신음 소리가 되었다. 인간 군상의 마지막 합창이었다.


"뛰어!"


테카트가 명령했다. 


그들은 뛰었다. 시체를 밟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피하며, 악취 속에서 숨을 참으며. 


발밑에서 뭔가 으스러졌다. 뼈였을 수도, 썩은 살이었을 수도 있었다. 미끄러졌다. 피와 고름이 바닥을 미끌거리게 만들었다.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따라오는 소리였다. 기어오는 소리, 질질 끌리는 소리, 신음 소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대강당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강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두께 30센티미터의 방폭 도어였다. 한때는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던 뉴틀란트 최대의 집회 공간. 개막식 때는 유명 오페라 가수가 노래를 불렀고, 과학자들이 인류의 미래를 논했던 곳. 이제는 그저 거대한 무덤 같았다. 문에는 검붉은 손자국이 가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두드리고 긁은 흔적이었다.


테카트가 보안 코드를 입력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입력하는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손이 얼마나 떨리는지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잘못 눌렀다.


삑- 삑- 삑-


오류음이 났다. 날카로운 전자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이런..." 그가 저주했다. 


숨을 고르고 다시 시도했다. 이번엔 다른 코드를 입력했다. 비상시 우선 접근 코드였다. 평의회 의장만이 아는 코드.


삑- 삑- 띠링.


문이 열렸다. 아니, 조금 열렸다. 10센티미터쯤 열리다가 멈췄다. 기계음이 끊겼다. 유압 장치가 중간에 멈췄다. 전력이 또 나간 것이었다. 비상 전력마저도.


"밀어." 데카트가 명령했다.


그들은 문에 달라붙었다. 800킬로그램의 강철 문을 밀어 열어야 했다. 처음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온 힘을 다해 밀었다. 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속이 금속을 긁는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끼이이익. 마치 거대한 관 뚜껑을 여는 것 같았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문이 반쯤 열렸을 때, 안에서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공기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었다.


부패한 고기 냄새가 첫 번째로 왔다. 그다음은 배설물 냄새, 구토물 냄새, 그리고 인간의 절망이 썩어서 나는 냄새. 모든 것이 뒤섞여 거의 물리적인 형태로 그들을 때렸다.


올라프가 헬멧을 벗고 토했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나르도 무릎을 꿇었다. 


"젠장... 젠장..." 그가 계속 중얼거렸다.


테카트와 닐슨만이 꼿꼿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은 차갑고 단호했다.


"들어가자."


대강당 안은 어두웠다. 


비상등 몇 개만 깜빡이고 있었다. 붉은 빛이 주기적으로 공간을 훑었다. 3초마다 한 번씩. 그때마다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첫 번째 깜빡임: 거대한 공간의 윤곽이 드러났다. 높은 천장, 계단식 좌석, 중앙 무대.


두 번째 깜빡임: 사람들이 보였다. 아니, 사람이었던 것들이 보였다.


세 번째 깜빡임: 진실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있었다.


바닥에, 의자에, 통로에.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형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2만 명이 들어차 있었던 것 같았다. 계단식 좌석은 시체로 가득했다. 통로는 쓰러진 사람들로 막혀 있었다. 무대 위에도, 무대 아래에도, 심지어 천장 조명 구조물에도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일부는 목을 맨 것이었고, 일부는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은 것이었다.


일부는 움직였다. 아주 느리게, 마치 구더기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우리가 집회를 열 곳이라고?" 마르타가 경악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의사로서 수많은 죽음을 봐왔지만, 이런 광경은...


"다른 곳은 없어." 테카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해야 해. 여기가 유일하게 방송 장비가 있는 곳이야."


그들은 길을 만들어야 했다.


문자 그대로 시체를 치우며 길을 만들었다. 


올라프가 첫 번째 시체를 움직이려 했다. 늙은 남자였다. 아니, 늙어 보였을 뿐 실제로는 젊었을 수도 있었다. 영양실조는 사람을 빠르게 늙게 만들었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셌고, 피부는 주름져 있었다. 그러나 손은 젊은이의 손이었다. 못이 박힌 흔적이 있었다. 노동자였던 것이다.


시체를 들어 올리자 뭔가 떨어졌다.


딱. 딱. 여러 개가 떨어졌다.


쥐였다. 죽은 쥐들. 남자의 주머니에 가득 들어 있었다. 그의 손에도 쥐가 하나 더 쥐어져 있었다. 머리가 반쯤 먹힌 쥐였다. 죽기 전 마지막 식사였을 것이다. 날것으로.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계속 움직여." 테카트가 명령했다. "시간이 없어."


그들은 시체를 벽쪽으로 옮겼다. 한 구, 두 구, 세 구... 열 구가 넘어가자 셈을 멈췄다. 너무 많았다. 


시체를 옮기다가 발견한 것들:


한 가족이 함께 죽어 있었다. 서로를 껴안은 채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아이. 막내는 겨우 다섯 살쯤 되어 보였다.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함께였다. 아이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부모가 마지막까지 무서워하지 말라고 달랬을 것이다.


한 여자가 일기장을 안고 죽어 있었다. 펼쳐진 페이지에는 글씨가 있었다. '미안해요, 엄마. 더 이상은...' 문장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펜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한 남자가 사진을 들고 있었다. 가족사진이었다.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 햇빛이 비치는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중앙 통로를 확보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그 사이 몇몇 '시체'가 움직였다.


"도... 와..."


한 여자가 손을 뻗었다. 뼈만 남은 손이었다. 손목에는 병원 팔찌가 있었다. 'E-7 구역 격리 환자'라고 적혀 있었다. 격리 병동에서 탈출한 것이었다. 감염자였을 수도 있었다.


"물... 물..."


그녀의 입술은 갈라져 있었다. 혀는 부어올라 있었다. 탈수 증상 말기였다.


라그나가 그녀를 지나쳤다. 차갑게.


"줄 물이 없어."


사실이었다. 그들이 가진 물은 정수 필터를 통과한 귀중한 것이었다. 함부로 나눠줄 수 없었다.


여자의 손이 축 늘어졌다.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은 여전히 뜨여 있었다. 원망하는 듯한 눈이었다.



무대에 올라가자 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연단 뒤에 시체가 쌓여 있었다. 10구는 넘어 보였다. 모두 같은 자세였다.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채. 기도하다 죽은 것이었다. 


그들의 옷에는 같은 문양이 있었다. 급조한 종교 집단의 표식이었다. '구원의 빛'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뉴틀란트에는 이런 집단들이 생겨났다. 절망이 만든 광신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뭔가 제단 같은 것이 있었다. 깨진 접시와 컵들이 놓여 있었다. 접시에는 검붉은 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이건..."


홀름크비스트가 숨을 멈췄다.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듯 움직였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작은 뼈들이었다. 너무 작아서 처음에는 닭뼈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어린아이야." 마르타가 확인했다. 의사의 눈은 정확했다. "세 살쯤... 대퇴골과 상완골이..."


"그만." 테카트가 끊었다. "방송 장비를 확인해."


하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최후의 순간, 광기에 빠진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구나르가 방송실로 들어갔다. 문은 부서져 있었다.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었다. 도끼로 찍은 자국이 있었다.


안은 엉망이었다. 


장비들이 파괴되어 있었다. 조정판은 망치로 부순 흔적이 있었다. 모니터는 깨져 있었다. 의자는 부서졌고, 조각난 나무는 무기로 쓰인 흔적이 있었다. 끝에 피가 묻어 있었다.


조정판에는 검붉은 자국이 있었다. 피였다.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누군가 피 묻은 손으로 장비를 만진 것이었다. 그리고 벽에는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있었다. 


'도와줘'

'배고파'  

'죽여줘'

'신이여'

'악마여'

'아무나'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새겨져 있었다. 글씨는 점점 흐트러졌다. 마지막에는 그저 긁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 손톱이 부러진 흔적이 있었고,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시체가 하나 있었다. 


방송 기술자였던 것 같았다. 유니폼의 흔적이 있었다. 그는 장비를 부순 사람들로부터 장비를 지키려다 죽은 것 같았다. 머리에 큰 상처가 있었다.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다.


"작동하는 게 있나?" 테카트가 물었다. 목소리에 희망이 없었다.


구나르가 이것저것 만져봤다.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대부분은 죽어 있었다. 전선이 뜯겨 있거나 부품이 빠져 있었다. 누군가 금속을 뜯어간 것이었다. 구리선은 특히 귀했다. 물물교환의 화폐처럼 쓰였다.


"고칠수는 있을거 같습니다만... 오래 걸릴겁니다. 당장은 우선."


닐슨이 구석에서 낡은 확성기 하나를 찾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스위치를 올렸다. 빨간 불이 들어왔다.


배터리 표시등을 확인했다. 10%밖에 남지 않았다. 오래 쓸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걸로 해야겠군." 테카트가 결정했다. "충분해. 어차피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시체들 사이를 지나, 피웅덩이를 밟으며, 죽음의 악취 속을 걸었다. 


그의 걸음은 느렸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그는 대강당을 둘러보았다. 한때 1만 명이 그의 연설을 듣던 곳. 이제는 죽음의 극장이 되어 있었다.


붉은 비상등이 다시 깜빡였다. 


그 빛 속에서 죽은 자와 산 자가 구별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색이었다. 


붉은색이었다.

댓글 [ 4 ]

  마히롱
  45주 전
끔찍하노
  프레빌
  45주 전
원래구상했던뉴틀란트가이거긴함
파벌싸움없는대신에생존난이도올린거
  픈비주딱
  45주 전
고의적인 악의가 느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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