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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초상, 신이 죽은 아침


프레빌 36주 전 잡담 | 반응 : 중립적 | 댓글 1

"여호수아님, 오늘도 응답이 없으시나이까."


보좌 제사장 엘리야의 목소리가 지성소의 동사한 침묵을 갈랐다. 그의 입김은 유령의 한숨처럼, 죽은 자의 마지막 고백처럼 하얗게 피어올랐다. 절멸전쟁이 남긴 핵겨울은 예루살렘의 새벽을 영원한 상의 시간으로 얼려버렸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언약궤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밤새 유지한 기도의 자세가 그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관절마다 녹슨 못이 박힌 듯 삐걱거렸다. 에봇의 금실은 시간의 부패를 견디지 못했다 - 한때 태양의 영광을 직조했던 그 실이 이제는 죽어가는 항성의 마지막 한숨처럼 갈색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가슴팍의 호센 - 열두 지파의 운명을 품은 예언의 보석판 - 은 침묵했다. 르우벤의 홍옥은 응고된 피의 절규로, 유다의 에메랄드는 부패한 에덴의 추억으로, 베냐민의 벽옥은 잿더미 속 침묵의 비명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열 번째 해." 


여호수아의 목소리는 광야를 떠도는 망자의 속삭임이었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스며 나온 피가 그의 수염에 잊혀진 언약처럼 새겨졌다.


미카엘의 존재가 공간의 밀도를 바꾸었다. 대천사의 신성력이 지성소의 공기를 수은처럼 무겁게, 독처럼 짙게 만들었다. 한때 천국의 깃발이었던 순백의 날개가 이제는 타락한 낙원의 묘비처럼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방사능과 신성력의 불경한 교합이 빚어낸 기형적 숭고함이었다.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는 검은 재는 성전 바닥에 묵시록의 각주처럼 쌓였다. 그 재를 밟은 자들의 발자국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카인의 표식이 되었다.


"인간들이 또다시 경계를 침범하려 합니다."


미카엘의 손에서 신성력이 응축되었다. 작은 태양이, 아니 분노의 특이점이 그의 손바닥에서 맥동했다. 섭씨 3천도의 순수한 적의가 물질화되고 있었다.


폭발.


충격파가 성전의 척추를 타고 흘렀다. 고대 히브리 문자들 - 카도쉬(거룩), 아도나이(주님), 엘 샤다이(전능자) - 가 새겨진 현무암 기둥이 비명을 질렀다. 균열 사이로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는 솔로몬 시대에 봉인된 순교자들의 피였다. 천 년의 침묵을 지킨 성스러운 상흔이 이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복구작업의 공로를 방패 삼아 권리를 주장한다니." 


미카엘의 삼중 화음이 공간을 찢었다. 세 개의 입에서 토해내는 목소리가 불협의 삼위일체를 이루었다. 


"수명이 채 백 년도 되지 않는 먼지들이. 그들의 시조 아담도 천 년의 문턱을 넘지 못했거늘, 이제는 방사능에 절여져 마흔의 계절도 견디지 못하는 주제에."


---


여호수아가 일어서 창밖을 응시했다. 


예루살렘의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이 뜯어낸 살점이었다. 붉은빛과 회색빛, 병든 노란빛이 기름처럼 엉겨 붙어 영원한 황혼을 만들고 있었다. 방사능 구름인지 자연의 시체인지 구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도시 상공에 매달려 있었다. 간헐적으로 번쩍이는 녹색 섬광 - 우라늄 입자들의 체렌코프 비명 - 이 죽은 하늘의 경련이었다.


성벽 너머, 오염구역에서 정찰대가 귀환하고 있었다. 열 명이 나갔으나 일곱만이 자신의 다리로 돌아왔다. 


그들이 입은 방호복은 인류가 만든 마지막 갑주였다. 42킬로그램의 납이 그들을 산 채로 관 속에 가두고 있었다. 헬멧의 강화유리는 방사능 입자들의 끊임없는 충돌로 백내장에 걸린 신의 눈처럼 뿌옇게 실명해가고 있었다.


들것 위의 첫 번째 병사는 이미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 급성 방사선 증후군이 그의 세포 하나하나를 배신자로 만들고 있었다. 검은 피가 모든 구멍에서 쏟아져 나왔다 - 혈소판의 항복, 응고의 포기, 생명이라는 체계의 총체적 붕괴.


두 번째는 신경계의 반역에 사로잡혀 있었다. 경련하는 근육이 자신의 뼈를 부러뜨리는 소리가 마른 나뭇가지 꺾이듯 울렸다. 그의 눈은 이미 세상과 작별했고, 입에서는 영혼의 마지막 잔해가 거품처럼 일었다.


세 번째가 가장 잔혹한 저주를 받았다. 의식의 명료함. 열여덟 살 소년은 자신의 내장이 액화되는 과정을 각성된 채로 목격하고 있었다. 그의 비명은 돌벽을 뚫고, 천사들의 귀를 뚫고, 침묵하는 신의 왕좌까지 닿으려 몸부림쳤다.


"미카엘, 우리가 밖에 나서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여호수아의 목소리에는 십 년이라는 시간의 퇴적층이 쌓여 있었다. 한때 흑요석의 광택을 자랑하던 그의 수염은 이제 표백된 뼈처럼 하얗게 바래 있었다. 시간이 아닌 절망이 조각한 노화였다.


"신성력이 오염물질과 접촉하는 순간, 존재 자체가 모순이 됩니다."


미카엘이 이를 갈았다.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한 어금니가 맞부딪히며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를 냈다. 치아 틈새로 새어 나온 신성력의 불꽃이 공기 중의 먼지와 만나 미세한 소멸을 연쇄시켰다.


"라파엘의 실험을 잊으셨습니까. 반경 217미터가 유리 평원이 되었소. 만 도의 열이 물질의 기억마저 지워버렸지. 라파엘의 왼팔은 그날 존재의 목록에서 영원히 삭제되었소."


미카엘의 날개가 불안의 리듬을 탔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들에게 동등함을 허락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지. 그들은 도구일 뿐이야. 야훼가 흙으로 빚은 일회용 그릇. 필요가 다하면 깨뜨려지는 토기."


미카엘의 마지막 말이 지성소에 울려 퍼졌다. '소모품'이라는 단어가 메아리처럼 돌기둥들 사이를 맴돌았다.


여호수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언약궤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케루빔의 날개 사이, 속죄소 위에 한때 야훼의 영광이 머물던 그곳은 이제 텅 비어 있었다. 쉐키나의 빛은 이미 오래 전에 꺼졌다.


"회의 시간입니다."


미카엘이 차갑게 통보했다. 명령이었다. 한때는 '대제사장님, 산헤드린이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정중하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여호수아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에봇의 금방울들이 짤랑거렸지만, 그 소리마저도 깨진 종소리처럼 불협화음을 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카엘이 먼저 지성소를 나섰다. 그의 검은 날개가 문지방을 스치자, 대리석에 그을음 자국이 남았다. 뒤따르는 여호수아는 그 자국을 밟으며 걸었다.


복도는 길었다. 120미터. 양옆 벽에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었다. 아브라함의 부름, 출애굽, 다윗의 대관식, 솔로몬 성전의 봉헌. 하지만 절멸전쟁 이후 그림들도 변했다. 아브라함의 얼굴에 곰팡이가 피었고, 홍해는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다윗의 왕관은 녹슬었고, 솔로몬 성전은 균열로 갈라져 있었다.


복도 중간쯤, 창문 너머로 인간 정찰대의 귀환 행렬이 보였다. 들것에 실린 자들과 간신히 걷는 자들. 그들을 이끄는 것은 군단장 사울이었다. 그의 갑옷에는 오염생물의 산성 체액이 튄 자국이 있었다. 철판이 녹아내려 속살이 보였다.


"불쌍한 것들."


미카엘이 창밖을 흘끗 보며 말했다.


여호수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 계산했다. 이번 달 사망자 23명. 부상자 47명. 실종자 8명. 이 속도라면 1년 안에 정찰 가능한 인원이 바닥날 것이다.


드디어 산헤드린 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육중한 청동 문에는 일곱 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각 인은 하나의 대천사를 상징했다. 문지기 천사 두 명이 창을 교차시켜 입구를 막고 있었다. 키 3미터의 거구들이었지만, 그들의 날개도 끝부분이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께서 입장하신다."


문지기가 외쳤다. 형식적인 선언이었다.


청동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무게가 3톤에 달하는 문짝이 움직이자 경첩에서 쇳소리가 났다. 기름칠을 한 지 오래되었다. 관리 인력이 부족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회의실 내부가 드러났다.


---


여호수아가 산헤드린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 여섯 대천사는 이미 원탁을 에워싸고 있었다.


공식시간과 47분의 배신. 그들이 자신을 배제한 채 모의했다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원탁은 권력의 화석이었다. 레바논 산맥의 심장에서 도려낸 85톤의 순백 대리석. 솔로몬의 석공 3천 명이 7년의 세월을 바쳐 조각한 신화. 표면은 시간의 거울이었으나, 절멸전쟁의 트라우마가 새긴 미세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그 틈새로 배어 나오는 붉은 광채는 원탁이 흘리는 피눈물 같았다.


둘레에 새겨진 칠십이 장로의 이름들은 은으로 써 내려간 묘비명이었다. 방사능이 그 은을 검은 부패로 물들이고 있었다. 중앙의 다윗의 별은 여전히 황금의 맥박을 뛰었지만, 그 리듬은 부정맥 환자의 심전도처럼 불규칙했다. 죽어가는 왕국의 마지막 심장박동.


각 천사의 문장이 살아 꿈틀거렸다. 미카엘의 불타는 검은 실제로 공간을 지졌고, 가브리엘의 백합은 시간의 색을 입었다. 라파엘의 물고기는 허공을 헤엄쳤고, 우리엘의 불꽃은 영원을 태웠다. 라구엘의 저울은 보이지 않는 죄업을 달았고, 레미엘의 뿔피리는 죽음의 선율을 흥얼거렸다.


그리고 공백. 사리엘의 초승달은 주인과 함께 금이 가고 있었다.


"여호수아."


미카엘이 이름을 불렀다. 존칭의 부재가 단도처럼 날카로웠다.


"십 년째입니다. 야훼의 응답은 언제 돌아옵니까?"


재판이었다. 심문이었다. 삼중 화음이 백 개의 목소리로 분열되어 그를 에워쌌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수정 옥좌를 바라보았다. 5톤의 투명한 권위. 그 속에 봉인된 성물들 - 모세의 지팡이 파편, 아론의 싹튼 가지, 만나의 잔재 - 이 희미한 인광을 발했다. 케루빔 날개 조각은 보이지 않는 바람에 떨고 있었고, 사자 머리 팔걸이의 루비 눈은 응고된 피처럼 붉었다.


다른 황금 옥좌들보다 두 배는 화려했으나, 지금 그곳에 앉는다면 그것은 텅 빈 권위에 기댄 패배의 고백이 될 터였다.


그는 서 있기를 선택했다. 무너져도 서서 무너지기를.


"야훼의 시간은 우리의 달력에 갇히지 않소. 욥은 38장을 기다려 답을 얻었고, 광야의 백성은 40년을 헤맸으며, 바빌론의 포로들은 70년을 견뎠소."


"그래서?"


우리엘이 폭발했다. 파괴의 천사가 일어서자 의자가 뒤로 쓰러졌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천이백도의 열기가 공기를 플라즈마의 바다로 바꾸었다. 네 개의 팔이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각각 심판의 원소 - 번개, 화염, 서리, 폭풍 - 을 토해냈다.


"십 년입니다! 저 저열한 종족들이 다시 전쟁의 나팔을 불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이미 우리의 지척에서 한 정신이상자 엘프 한놈이 왕국을 재건했습니다! 동토의 끔찍한 두더지들은 아직도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살아있고 에우로파와 루스는 말할 것도 없이 벌레같은 목숨을 연명했으며...! "


우리엘이 잠시 목소리를 삼키더니 주먹이 원탁을 강타했다. 다윗의 별이 갈라지고 붉은 체액이 솟구쳤다.


"그 징그럽게도 강한 장생종의 영생자놈은 아직도 건재합니다!"


"당신은 그 세월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텅 빈 지성소에서 메아리조차 없는 독백만 되풀이했을 뿐입니다. 고장 난 오르골처럼, 루프에 갇힌 망령처럼!"


"우리엘."


가브리엘이 개입했다. 네 개의 눈이 시간의 네 방향 - 과거의 폐허, 현재의 혼돈, 미래의 안개, 가능성의 미로 - 을 동시에 주시했다. 


"예의를 지킵시다. 하지만 우리엘의 진단은 정확합니다."


가브리엘이 허공에 에녹 문자로 묵시록을 썼다. 빛나는 숫자들이 종말의 회계장부를 펼쳤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이 속도라면 5년 안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집니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합니다."


"무슨 뜻이오?"


여호수아의 손이 우림과 둠밈을 움켜쥐었다. 한때 신의 의지를 번역하던 신성한 주사위. 검은 오닉스와 흰 월장석. 긍정과 부정. 빛과 그림자. 존재와 무.


이제는 그저 차가운 돌멩이. 신이 침묵한 이후 단 한 번도 빛나지 않았다. 뜨거워지지 않았다. 진동하지 않았다.


"집단 지도 체제를 제안합니다."


라파엘이 나섰다. 치유의 천사의 얼굴 절반은 녹아내려 있었다. 오염구역에서 얻은 불치의 낙인. 형광 녹색 고름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그의 발치에 독성 웅덩이를 만들었다.


"대제사장직은 형식상 유지하되, 실권은 산헤드린의 3분의 2 다수결에 둡니다. 야훼가 응답하시면 원상 복구한다는 조건으로."


거짓말이었다. 깨진 권위는 접합되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순서대로 응시했다. 미카엘의 확신, 우리엘의 경멸, 가브리엘의 계산, 라파엘의 냉정, 라구엘의 저울질, 레미엘의 무관심.


"인간들 없이 어떻게 십만 제물을 모으겠소? 그들이 우리의 아킬레스건임을 모르시오?"


"그들은 도구입니다. 필요하다면 강제로라도-"


미카엘의 선언이 중단되었다.


청동 문이 두드려졌다. 세 번. 인간의 예법이었다.


"들어오라."


미카엘이 명령했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한마저 찬탈하며.


---


문이 열리고 다섯 명의 인간이 들어왔다.


그들이 몰고 온 것은 생존의 악취였다. 땀과 피, 공포와 결의가 발효된 냄새.


율법학자 다니엘이 선봉에 섰다. 찢어진 예복은 그의 훈장이었고, 부러진 갈비뼈는 그의 무기였다. 양가죽 두루마리와 모세 율법서를 든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상인 야곱의 붉은 로브는 전쟁의 깃발처럼 너덜거렸다. 사울의 방패에는 죽은 자 50명의 이름이 묘비명처럼 새겨져 있었다. 미리암의 가운은 피와 고름으로 그린 지옥도였고, 바라바의 채찍은 처음으로 피를 씻어낸 뒤였다.


그들이 3미터 앞까지 다가왔다. 금기의 침범이었다.


천사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날개가 펼쳐지고, 신성력이 응축되고, 심판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때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이번 달 오염제거 작업으로 23명이 죽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부서진 몸으로 서 있는 인간의 마지막 위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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