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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초상, 부서진 자들의 탄원


프레빌 35주 전 잡담 | 반응 : 중립적 | 댓글 3

"이번 달 오염제거 작업으로 23명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몸은 부서진 현악기처럼 떨렸다. 천사들 앞에 선다는 것 - 그것은 제단 위에 올려진 제물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양가죽 두루마리를 펼치는 그의 손가락들이 죽음의 경련처럼 떨고 있었다. 검은 잉크로 쓰인 이름들이 마치 응고된 피처럼 양피지 위에 번져 있었다.


"아브라함 벤 이삭, 열아홉의 봄에... 방사선이 그의 내장을 천천히 녹였습니다. 73시간의 고통 끝에..."


말이 목구멍에서 부서졌다. 침을 삼키려 했으나 입 안은 재처럼 메말라 있었다. 천사들의 시선이 그의 살갗을 벗겨내는 것만 같았다. 특히 우리엘 - 파괴의 화신 - 의 네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그의 폐를 말려버릴 듯했다.


"사라 바트 미리암은... 스물두 해의 삶을 오염 생물의 턱 속에서 마감했습니다. 야곱은 열일곱에... 방호복이 찢어진 순간 증기가 되어..."


각각의 이름이 공기 중에 매달렸다. 죽은 자들의 혼백이 그들의 이름과 함께 회의실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온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 아니, 그것은 온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밀도가 변하는 것이었다. 다니엘 뒤에 선 인간들은 공포라는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야곱의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그의 두려움을 배신하고 있었고, 미리암의 떨리는 손은 그녀가 붙잡으려 애쓰는 용기의 부재를 증명했다.


"또한..."


"닥쳐라, 인간."


우리엘의 음성이 지각을 찢었다. 


네 팔 중 하나가 허공에 심판의 기하학을 그렸다. 신성력이 응축되어 번개의 채찍이 되었고, 그것이 다니엘을 향해 뱀처럼 날아들었다.


섬광-


충격파가 다니엘의 육신을 장난감처럼 구겼다. 그의 몸이 부서진 날개를 가진 새처럼 10미터를 날아갔다. 석벽과의 충돌 직전, 군단장 사울이 본능이라는 마지막 명령에 따라 몸을 던졌다. 두 육체가 얽혀 바닥을 구르는 동안 사울의 갑옷이 종이처럼 찢어졌고, 붉은 꽃이 피어났다.


"크윽..."


다니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신음이 아니라 피였다. 부러진 늑골이 폐를 관통했다. 그럼에도 그는 일어서려 했다. 포기는 죽음보다 잔인한 선택이었으므로.


"우리엘."


여호수아의 한 마디가 공간을 얼렸다. 대제사장의 권위는 기울어진 탑이었지만,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다.


"계속하게, 다니엘."


다니엘이 무너진 인형처럼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피가 그의 수염을 따라 흘러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우리는... 신성한 의식을 위해... 우리의 전부를 바치고 있습니다."


말할 때마다 피거품이 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죽어가는 자의 속삭임이었다. 사울이 그를 대신해 말을 이어받았다.


"북쪽 황무지에서, 동쪽의 잿더미에서, 남쪽의 독기 가득한 땅에서... 우리는 이종족들을 사냥했습니다. 십 년이라는 세월을..."


회의실을 지배하는 침묵이 그들을 질식시켰다. 천사들의 시선은 해부용 칼날이었고, 인간들은 실험대 위의 표본이었다.


"영원한 왕국을 위함임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


사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습니다. 작은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대가?"


미카엘이 일어섰다.


그것은 단순한 기립이 아니었다. 존재의 확장이었다. 공간이 그를 중심으로 일그러졌고, 중력이 두 배로 증폭되었다. 인간들의 무릎이 저절로 꺾이려 했다. 5미터로 솟아오른 그의 형상은 더 이상 천사가 아니라 심판 그 자체였다. 


여섯 날개가 펼쳐지며 회의실은 묵시록의 어둠에 잠겼다. 검은 깃털에서 떨어지는 재가 인간들 위에 저주의 눈처럼 내렸다. 그 재가 살갗에 닿을 때마다 작은 낙인이 새겨졌다. 미리암의 입에서 새어 나오려는 비명은 목구멍에서 타버렸다.


"너희는 도구다."


미카엘의 삼중 화음이 현실의 뼈대를 흔들었다. 그 진동에 바라바의 고막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도구가 대가를 요구하는가?"


침묵이 떨어졌다. 


그것은 무덤의 침묵이었고, 심판 전의 정적이었으며, 희망이 질식하는 소리였다.


야곱의 무릎이 먼저 항복했다. 예루살렘 최고의 상인이었던 그도 이 순간만큼은 먼지에 불과했다. 


"도... 도구도..."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흩어지는 재처럼 희미했다.


"도구도 관리가 필요합니다. 무딘 칼날로는... 아무것도 벨 수 없듯이..."


가브리엘의 네 개 눈이 동시에 야곱을 해부했다. 과거의 눈은 그의 모든 거래와 거짓을 들춰냈고, 현재의 눈은 그의 맥박과 땀샘을 세고 있었으며, 미래의 눈은 그의 죽음의 순간을 이미 목격했고, 가능성의 눈은 그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대안들을 조롱하듯 보여주었다.


"충분하다."


라파엘의 개입이었다. 치유의 천사의 녹아내린 얼굴에서 형광빛 고름이 똑똑 떨어졌다. 그것이 대리석에 닿자 산처럼 바닥을 녹이며 독성 연기를 피워 올렸다.


"본론을 말해라. 시간은 너희에게도, 우리에게도 사치다."


다니엘이 다시금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입술은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두루마리를 든 손은 기적처럼 떨리지 않았다.


"산헤드린의... 성스러운 회의에... 한 명의 목격자를..."


'참관권'이라는 단어가 완성되기도 전에 우리엘이 폭발했다.


"감히!"


화염이 그의 육신에서 태양플레어처럼 폭발했다. 온도가 순식간에 임계점을 넘었다. 인간들의 피부가 양피지처럼 말라가기 시작했다. 미리암의 비명은 뜨거운 공기에 삼켜져 재가 되었다.


미카엘의 염화검이 칼집에서 반쯤 미끄러져 나왔다. 그 칼날에서 새어 나오는 열기가 현실의 질감을 녹이고 있었다.


여호수아가 손을 들었다. 느린 동작이었지만, 거기에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권위의 잔해가 있었다.


"들어보자."


그 한 마디가 우리엘을 물러서게 했다. 마지못해,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참... 참관만을... 투표권이 아니라... 단지 목격만을..."


다니엘의 목소리는 이제 죽어가는 촛불의 마지막 떨림이었다.


천사들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오갔다. 라파엘의 계산, 가브리엘의 중립, 라구엘의 저울질, 레미엘의 침묵. 그들 각자의 의도가 공기 중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의료단장 미리암이 떨리는 다리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공포가 그녀를 마비시켰지만, 의사의 맹세가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매일... 열 명이 죽어갑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서졌지만, 진실의 무게를 담고 있었다.


"이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단지... 주를 더 잘 섬길 수 있는... 기회를...단지 그 기회를 주십쇼."


라구엘의 저울이 요동쳤다. 정의의 천사조차 부정할 수 없는 논리가 거기 있었다.


"투표하자."


라파엘의 제안이었다. 여호수아를 약화시킬 절호의 기회를 그는 놓치지 않을 것이었다.


모든 시선이 여호수아에게 수렴되었다.


대제사장은 오래도록 침묵했다. 그의 시선이 지성소를 향했다. 그곳에서 십 년, 3,650번의 새벽기도, 그리고 3,650번의 침묵. 


어쩌면 이 침묵이야말로 신의 대답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선택하라는, 가장 잔인한 형태의 자유 의지.


"인간들의 제안을..."


여호수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인간들의 숨이 멎었다. 


"부분적으로 수용하되, 조건이 있소."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지는 순간이었다.



여호수아의 시선이 천천히 인간들을 훑었다. 


부서진 것들. 피와 공포의 캔버스. 그러나 그들의 눈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아직 꺼지지 않고 있었다. 생존 의지라 부르기엔 너무 날것이었고, 희망이라 명명하기엔 너무 훼손된 그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인지도.


"산헤드린 참관은 불허한다."


짧은 선고. 인간들의 어깨가 무너졌다. 


그러나—


"대신."


여호수아가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계산이 있었다.


"매주 한 번, 대제사장에게 직접 보고한다. 비공개로."


미카엘의 얼굴이 돌가면이 되었다. 


그는 즉시 알아차렸다. 여호수아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개인 정보망. 천사들의 감시 밖에서 작동할 그림자 조직.


"그리고."


여호수아가 멈췄다. 계산된 침묵이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을 때, 그가 폭탄을 떨어뜨렸다.


"의식 이후, 생존한 인간 중 십사만 사천이 새 예루살렘의 시민이 된다."


정적.


그리고 폭발.


"무엇이라고?"


우리엘의 네 팔이 동시에 화염을 토해냈다. 온도계가 있었다면 파열되었을 것이다. 회의실의 대리석이 열기에 갈라지기 시작했다.


"네 자리를 망각했나, 대제사장!"


우리엘의 목소리가 화산처럼 분출했다.


"선지자 놀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야훼께서 응답하시면."


여호수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분했다. 그 대비가 더욱 섬뜩했다.


"새 세계가 열릴 것이오. 그 세계에도... 종은 필요하지 않겠소?"


"신성모독이다!"


미카엘의 염화검이 완전히 해방되었다. 2미터의 불타는 심판. 칼날이 지나간 자리의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현실의 직물이 그 열기에 녹아내렸다.


"야훼의 설계를 더러운 거래로 얼룩뜨리는가?"


"야훼는 침묵하고 계시오."


단순한 문장. 그러나 그 안에는 3,650일의 절망이 압축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올린 기도. 매일 밤 받은 침묵. 그 무게가 다섯 글자에 담겨 있었다.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하오."


여호수아가 우림과 둠밈을 만졌다. 차가운 돌. 죽은 신의 주사위.


"그것이 남은 유일한 선택이오."



"표결하자."


가브리엘의 개입이었다. 네 개의 눈이 동시에 네 개의 다른 시간을 보고 있었다. 과거의 실패, 현재의 선택, 미래의 파국, 가능성의 미로.


"인간들의 제안을 여호수아의 조건으로 수용하는 것에 대해."


라파엘의 손이 먼저 올라갔다. 녹아내린 얼굴에서 형광빛 고름이 한 방울 더 떨어졌다.


"나쁠 건 없어 보이는군."


가볍게 던진 말. 그러나 그 안에는 복잡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여호수아를 견제하고, 동시에 이용하고, 궁극적으로는 대체할.


가브리엘의 차례. 중립의 가면 뒤에서 무엇을 계산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찬성."


레미엘이 침묵했다. 그의 뿔나팔이 낮게 울었다. 레퀴엠인가, 서곡인가. 죽음의 천사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선율.


"찬성."


의외였다. 


라구엘의 저울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정의의 천사가 고뇌하고 있었다. 한쪽 접시에는 천 년의 전통이, 다른 쪽에는 내일의 생존이.


영원한 것 같은 순간이 지나고—


"찬성."


4 대 2.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미카엘의 염화검이 칼집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장송곡처럼 울렸다. 그 느린 귀환, 각 센티미터마다 묻어나는 분노와 경멸.


"역사가 기억할 것이오."


미카엘의 목소리가 예언처럼 낮게 깔렸다.


"야훼께서 침묵하신 지 3,650일째. 우리가 먼지와 계약을 맺은 날로."


"후회하게 될 것이오."


우리엘이 덧붙였다.


"야훼께서 돌아오시는 날, 이 모독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그날이 오면."


여호수아가 일어섰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그날의 심판을 받겠소."


"심판의 날."


미카엘이 그 단어를 음미했다.


"내 검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시오."


그것은 경고가 아니었다. 예언이었다.


여호수아가 인간들을 향해 돌아섰다.


다니엘은 의식의 경계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숨을 쉴 때마다 폐를 찔렀다. 야곱은 공포와 안도라는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경련하듯 떨고 있었다. 미리암은 무릎을 꿇은 채로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기도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의 주문.


여호수아가 손을 들었다.


신성력이 공기를 가르며 문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황금빛 에녹 문자들이 허공에서 불타올랐다. 각 글자가 나타날 때마다 실재하는 무게가 더해졌다. 계약의 조항들이 현실의 법칙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너희를 구속할 것이다."


여호수아의 목소리에는 종말의 차가움이 있었다.


"위반하는 순간—"


그가 멈췄다. 인간들의 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너희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겠다. 기억에서도. 역사에서도. 이 우주의 인과율에서도."


라파엘이 손짓했다. 황금빛 문자들이 붉은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피의 언약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명하라."


명령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다니엘이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빛나는 문자를 건드리자, 그의 피가 계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명씩, 그들의 피가 계약을 봉인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오늘 맺은 이 계약이 그들을 구원할 것인지, 파멸로 이끌 것인지.


단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이, 이 순간 그들이 아는 유일한 진실이었다.




회의실 문이 닫혔다. 육중한 청동이 돌쩌귀에 안착하는 소리가 마지막 선고처럼 울렸다. 인간들의 발자국—절뚝거리고, 비틀거리고, 서로를 부축하는—이 복도 끝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삼켜질 때까지, 천사들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살아서 나갔다. 


그 자체가 기적의 범주였다. 아니, 어쩌면 계산된 자비였을지도.


"여호수아."


미카엘의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 돌을 떨어뜨리듯 가라앉았다. 염화검은 칼집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칼자루를 쓰다듬고 있었다. 무의식적인 동작이 아니었다. 위협과 경계 사이 어딘가를 떠도는 제스처.


"당신이 무엇을 도모하는지, 나는 안다오."


그가 한 걸음 다가섰다. 발걸음 하나에 원탁의 수정잔들이 울었다.


"우리를 견제할 말로 그 벌레들을 키우려는 거겠지. 아주 영리한 수작이야."


여호수아의 입가에 무언가가 걸렸다. 


미소라고 부르기엔 너무 희미했고, 조소라고 하기엔 너무 슬펐다. 십 년—3,650일의 침묵 끝에 그의 얼굴에 나타난 첫 번째 표정. 그것은 감정이라기보다는 균열이었다. 영구동토처럼 얼어붙은 가면에 생긴 실금.


"일곱 대천사를 '견제'하는데..." 


여호수아가 천천히, 마치 시간을 음미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 움직임을 따라 신성력이 파문처럼 번졌다. 보이지 않는 압력이 공기를 짓눌렀고, 원탁 위의 그림자들이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저런 먼지를 쓴다고?"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십 년 동안 곪아온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그 정도로 무너져 보였나, 미카엘? 그 정도로... 초라해 보였나?"


"무너진 게 아니라 바뀐 거겠지."


미카엘의 그림자가 더 길게 늘어났다. 촛불들이 그의 존재에 압도되어 흔들렸다.


"전쟁 전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다른 존재야."


침묵.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두 존재의 신성력이 보이지 않게 충돌하고 있었다. 원탁의 대리석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도 의심하는군."


여호수아의 목소리에 쓴웃음이 묻어났다. 


"내가 두 번째 롱기누스라고. 내가 그 창을 찌른 자라고."


"바티칸은 우리와 손을 잡았었다."


미카엘이 말을 끊었다. 그의 세 개의 입이 동시에, 그러나 미묘하게 다른 톤으로 속삭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추방자들 편에 선 미친년이 나타났더군. 우연이라고?"


"우연이라니까."


"우연."


미카엘이 그 단어를 천천히, 마치 독을 음미하듯 씹어 뱉었다.


"신의 섭리에 우연이란 게 존재한다고 믿나? 모든 것이 그분의 계획이라면서?"


무거운 침묵이 두 존재 사이에 드리워졌다. 그것은 단순한 대화의 공백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의심과 경계, 배신의 기억과 불신의 씨앗—가 그들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가브리엘의 네 개 눈이 서로 다른 시간대를 보고 있었다. 과거의 눈은 여호수아의 변화를, 현재의 눈은 미카엘의 분노를, 미래의 눈은 다가올 파국을, 가능성의 눈은 이미 벌어진 수많은 배신들을 목격하고 있었다.


"충분히 해두시지."


라구엘의 목소리가 팽팽한 긴장의 실을 가위처럼 잘랐다. 정의의 천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무언가를 향해 손짓했다. 그의 움직임은 느렸고, 계산되어 있었다.


"할말이 있어보이는 자가 기다리고 있네"


부제사장 엘리야가 들어섰다. 키가 작은 천사였지만, 그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찬란한 날개들을 뵙습니다."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조롱이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찬란한 날개라니. 모두의 날개가 방사능에 검게 그을린 지 오래인데.


"보고드립니다. 북방의 노르드에 이어..."


그녀가 잠시 멈췄다. 효과를 계산한 듯한 침묵이었다.


"다마스쿠스의 땅 파는 자들도 여전히 숨 쉬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라구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동작은 가벼워 보였지만, 그의 눈은 차가웠다.


"이로써 절멸전쟁의 모든 조연들이... 아직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명백해졌군요. 흥미롭지 않습니까?"


"단 한 놈도."


미카엘의 목소리가 지하 묘지의 바람처럼 낮게 깔렸다. 그것은 분노를 넘어선 무언가였다. 불길한 예감, 혹은 이미 알고 있었던 진실의 확인.


"절반정도는 먼지가 되었기를 바랐는데."


그의 손이 다시 검으로 향했다가 멈췄다.


"바퀴벌레들은... 질기기도 하군."


그의 마지막 말이 회의실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알고 있었다.


오늘 맺어진 계약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최악의 시작.

댓글 [ 3 ]

  마히롱
  35주 전
대제사장 <- 얘도 천사임?
  프레빌
  35주 전
@아카라이브
얘 설정상 천사는 아닐걸? 그래서 일부러 미묘하게 잡는중
  아카라이브
  35주 전
ㄴㄴ 천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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