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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초상, 결단


프레빌 34주 전 잡담 | 반응 : 중립적 | 댓글 0

지하 감시 통로.


다니엘이 벽에서 귀를 떼었다. 돌 너머로 천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손짓하자, 다른 인간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끝났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긴장이 목을 조여왔기 때문이다.


"성과는?"


야곱이 물었다.


"실패다."


다니엘이 벽에 등을 기댔다. 피로가 그의 얼굴에 짙게 배어 있었다.


"처음엔 성공하는 줄 알았다. 미카엘과 레미엘이 거의 싸울 뻔했다. 하지만 우림과 둠밈이 깨지고... 우리엘이 무언가를 암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그들은 제3자의 개입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의심한다는 건가?"


바라바가 불안하게 물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시간문제일 거다."


사울이 벽을 주먹으로 쳤다.


"그럼 끝난 거 아닌가? 우리의 계획이 들통났다면..."


"어차피 끝이었다."


미리암이 차분하게 말했다.


"오늘도 정찰대에서 두 명이 죽었다. 내일은 세 명, 모레는 네 명. 이 속도라면 우리는 한 달도 버티지 못한다."


침묵이 흘렀다. 각자가 죽음의 시간표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는 이상한 빛이 있었다. 절망을 넘어선 무언가.


"그래도 그냥 죽을 수는 없다."


"무슨 뜻이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해보자."


그가 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녹슨 칼날이 희미한 빛을 반사했다.


"제단을 더럽히는 거다."


"뭐?"


"모든 제단을. 동시에. 인간의 피로."


사울이 숨을 들이켰다.


"그건 자살행위다. 즉시 들킬 거야."


"그래, 들킬 거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 거다."


다니엘이 칼날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십만 제물을 모으는 그들의 위대한 의식. 천 년을 준비한 그들의 신성한 제사. 그것이 우리의 피로 더럽혀진다면?"


야곱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망가질 거다."


"그래. 완전히 망가질 거다. 제단이 오염되면 정화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릴 거야. 그리고 혹시 아나?"


다니엘이 차갑게 웃었다.


"우리가 이미 뿌려놓은 의심의 씨앗이 다시 싹틀지도. 미카엘과 레미엘이 서로를 다시 의심할지도."


"하지만 우리는 죽는다."


미리암이 현실적으로 지적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다."


바라바가 쓴웃음을 지었다.


"적어도 무릎 꿇고 죽는 것보다는 낫지. 그 잘난 천사들에게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죽는 거야."


"복수인가?"


"복수가 아니라 증명이다."


다니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먼지가 아니라는 것을.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도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사울이 물었다.


"내일 밤. 새벽 제사 직전."


"준비할 게 많을 텐데."


미리암이 실무적으로 말했다.


"각자 피를 모아야 한다. 신선해야 한다. 그리고... 작별 인사도."


다섯 명의 음모자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이제 두려움이 없었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주가 우리의 마지막 날이다."


야곱이 말했다.


"의미 있는 마지막이 되게 하자."


그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마지막 준비를 위해. 마지막 작별을 위해.


다니엘만이 홀로 남았다. 그는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응시했다.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가 속삭였다.


"단지...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십시오."

---


새벽 전 가장 어두운 시간.


예루살렘은 죽음의 강을 건너다 멈춘 도시였다. 이승과 저승 사이, 존재와 무 사이의 경계선에 걸쳐진 채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방사능 바람이 골목을 순례하며 보이지 않는 경전을 읊조렸고, 그 독경은 돌과 돌 사이를 스며들어 건물들의 골수까지 침투했다. 성벽 너머에서 울려오는 오염생물들의 울음은 멸망한 세계가 꾸는 악몽의 신음성 같았다.


다니엘이 첫 번째 제단에 도착했을 때, 그의 왼손에 들린 가죽 주머니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체액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생명 자체였고, 37년이라는 시간의 응축이었으며,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의 묵직한 무게였다. 가죽을 투과해 전해지는 온기는 마치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이면서도 절박했다.


북쪽 제단은 미카엘의 성소였다. 천 년에 걸쳐 축적된 황금빛 신성력이 대리석의 결정 구조 깊숙이 침투해 있었고, 그것은 단순히 돌에 스민 힘이 아니라 정의와 심판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물질화된 것이었다. 다니엘이 한 걸음씩 경계를 침범할 때마다 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신성을 두려워하라는 태고의 명령이 새겨져 있었고, 지금 그 명령이 그의 모든 신경계를 통해 후퇴를 종용하고 있었다.


가죽 주머니의 매듭이 풀렸다. 붉은 생명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붉은색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지난 밤 그가 흘린 눈물의 염분이, 내일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아드레날린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의 엔도르핀이 섞여 있었다. 


첫 방울이 신성한 대리석과 만나는 순간, 일어난 것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충돌이었다. 필멸의 것과 영원한 것의 만남이었고, 유한과 무한의 모순적 포옹이었다. 미세한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그것은 물리적 연소가 아니라 존재론적 비명이었다. 


같은 시각, 정확히 같은 심장박동의 순간에, 동쪽 제단에서는 야곱이 똑같은 의식을 수행하고 있었다. 48년간 예루살렘의 시장에서 거래를 해온 그의 손은 수천 번의 계약서에 서명하며 단련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떨리지 않았다. 평생 그가 배운 것은 결정적 순간의 주저함이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이었다. 레미엘의 제단은 절대영도의 심연처럼 차가웠고, 그 한기는 골수를 얼리고 영혼까지 서리로 뒤덮으려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추위가 그의 결의를 더욱 단단하게 응고시켰다.


남쪽 제단에서 미리암의 손은 의사의 정확성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쪽에서는 사울이 전사의 결연함으로, 중앙 제단에서는 바라바가 창녀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자의 처절한 존엄성으로 같은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다섯 개의 제단, 다섯 명의 인간, 다섯 가지 절망이 하나의 시간 속에서 공명하고 있었다.


---

새벽 전 가장 어두운 시간.


예루살렘은 죽음과 삶 사이의 림보에 매달린 도시였다. 방사능 바람이 골목을 순례하며 레퀴엠을 읊조렸고, 그 독경은 돌벽의 모세혈관을 타고 스며들었다. 다니엘이 북쪽 제단에 첫 방울의 피를 봉헌한 지 정확히 삼십 번의 심장박동 후, 레미엘이 동쪽 제단의 경계를 넘었다.


죽음의 천사는 평소보다 한 시진 먼저 제단을 찾았다. 어제 회의에서 깨진 둠밈의 파편들이 아직도 그의 의식 속에서 날카롭게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단에서 열세 걸음 떨어진 지점에서 멈췄다.


피의 냄새. 


그것은 단순한 후각적 자극이 아니었다. 죽음의 천사에게 피는 악보였고, 각각의 혈액형은 다른 조성을 가진 교향곡이었다. 지금 그의 콧구멍을 침범한 것은 인간의 피였다. 37도의 체온이 아직 남아있는, 절망의 아드레날린과 배신의 코르티솔이 섞인, 그리고 무엇보다 '의도'라는 독이 용해된 피였다.


레미엘의 신성력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북쪽, 남쪽, 서쪽, 중앙. 다섯 개의 제단이 완벽한 동시성으로 오염되고 있었다. 오차는 0.3초 이내였다.


그의 사고가 빛의 속도로 가능성들을 해부했다.


```

제1명제: 조작된 증거들 -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

제2명제: 동시다발적 제단 오염 - 완벽한 조율, 정확한 타이밍

제3명제: 회의에서의 혼란 - 계산된 극본

결론: 지휘자가 있다

```


"오케스트라에는 지휘자가 필요하다."


레미엘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영하 273도의 절대영도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악기로는 이런 교향곡을 연주할 수 없다."


내부자. 배신자. 천사 중 누군가가 인간들을 꼭두각시로 사용하고 있었다.


산헤드린을 소집해야 하는가? 아니다. 배신자가 거기 있다면,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줄 뿐이다. 


"단독으로 처리한다."


그의 결정은 수술용 메스처럼 날카롭고 정확했다.


---


인간 거주구역 지하실.


다섯 명의 음모자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완수한 자의 평온함이 있었다.


"이제 끝이다."


다니엘이 조용히 말했다.


천장이 침묵했다. 그리고 레미엘이 강림했다.


"예상했다."


죽음의 천사의 선언이 떨어졌다.


"너희들의 귀환을."


다니엘이 일어섰다. 다른 이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망치지 않았다. 이미 각오한 결말이었다.


"우리를 기다렸군요."


다니엘의 목소리는 의외로 평온했다.


"누가 너희를 조종했나?"


"아무도 아닙니다."


다니엘이 단호하게 답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거짓말."


"믿고 싶은 대로 믿으십시오."


야곱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진실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레미엘의 손이 움직였다. 야곱의 심장이 멈췄다. 그는 쓰러지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봤소? 우리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암이 앞으로 나섰다.


"제단은 이미 더럽혀졌습니다. 당신들의 위대한 의식은 망가졌죠."


그녀의 심장도 멈췄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서서 쓰러졌다.


사울이 칼을 뽑았다.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사로서 죽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의 뇌혈관이 터졌지만, 쓰러지는 순간까지 칼을 놓지 않았다.


바라바가 웃었다.


"창녀로 살았지만, 인간으로 죽는군요."


그녀의 숨이 멎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끝까지 레미엘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


다니엘이 무릎을 꿇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만이 살아있었다. 레미엘이 의도적으로 남겨둔 것이었다.


"너는 주모자다."


레미엘이 다니엘 앞에 섰다.


"왜 그랬나? 무엇을 원했나?"


다니엘이 피를 토하며 웃었다.


"생존...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천사를 속였나?"

"너희가... 우리를 먼지라 불렀다... 도구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두려워하는군..." 그는 간신히 말을 계속 이었다. "이제..알겠나? 먼지라도 당신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먼지도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레미엘의 손이 그의 목을 잡았다.


"누가 배후인가?"


"우리가 배후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니엘이 마지막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 당신들은 서로를... 영원히 의심할 겁니다..."


그의 숨이 멎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남아있었다.


레미엘이 다섯 구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모두 눈을 뜨고 죽어있었다. 마치 마지막 순간까지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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