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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의 초상, 패배자들의 초상


프레빌 32주 전 잡담 | 반응 : 중립적 | 댓글 2

홋카이도의 아침은 회색빛 베일을 두른 채 깨어났다.


타이타니아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맨발로 서 있었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냉기가 뼈 속까지 파고들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녀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일깨웠다. 한때 인간들이 '삿포로 제3병원'이라 불렀던 이 건물은 이제 페어리들의 임시 궁전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궁전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복도는 길고 어두웠으며, 벽에는 곳곳에 곰팡이와 방사능의 흔적이 검은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형광등은 대부분 깨져 있었다. 남은 몇 개만이 불규칙하게 깜빡이며 병적인 빛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 빛조차도 온전하지 못했다. 때로는 푸르스름하게, 때로는 노랗게 변하며 죽어가는 반딧불이처럼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은 느렸다. 각 발걸음마다 미세한 마력의 파문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그것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꽃잎이 만드는 물결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물결은 예전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오염된 대기 속에서 마력은 탁하게 번져나갔고, 곧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렸다.


복도 양옆으로 늘어선 병실에서는 불규칙한 숨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어떤 이는 가쁘게 헐떡이며 공기를 갈구했고, 어떤 이는 너무나 느리게, 마치 다음 호흡이 마지막일 것처럼 조심스럽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소리들이 모여 기괴한 화음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죽음을 향해 천천히 행진하는 장송곡과도 같았다.


세 번째 병실 앞에서 그녀는 멈춰 섰다.


녹슨 문고리가 그녀의 시선 아래에서 차갑게 빛났다. 문틈 사이로 소독약과 썩어가는 마력의 냄새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그녀는 천천히 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안에는 작은 페어리 소녀가 누워 있었다. 루미나. 인간 나이로 치면 열 살쯤 되어 보였지만, 페어리에게 나이란 무의미한 개념이었다. 그녀는 천 년을 살 수도 있었고, 어제 태어났을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루미나의 날개는 한때 무지개빛이었을 것이다. 타이타니아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남아있는 몇 조각의 순수한 색채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자리부터 검게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마치 불에 타는 양피지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소멸해가고 있었다. 검은색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날개를 잠식해 들어갔고,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빛을 집어삼켰다.


"루미나."


타이타니아의 목소리는 작았다. 속삭임보다도 더 작은, 거의 생각에 가까운 소리였다. 소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눈꺼풀은 투명할 정도로 얇았고, 그 아래로 푸른 혈관이 거미줄처럼 보였다. 호흡은 얕았다. 너무나 얕아서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참을 지켜봐야 했다.


소녀의 옆에는 현지 출신 페어리 치료사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미유키였다. 홋카이도에서 삼백 년을 살아온 얼음의 페어리였다. 그녀의 손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흘러나와 루미나의 몸을 감쌌다. 그것은 차가운 치유의 마력이었지만, 오염된 몸에 닿자마자 마치 뜨거운 철판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치직거리며 증발해버렸다.


"효과가 없어요."


미유키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타이타니아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럴 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이 아이의 마력 순환계는 이미 70% 이상 오염되었어요. 체내의 마나 필터가 완전히 망가져서, 정화 마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치료법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미유키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묻어났다. 그녀는 이미 수십 명의 페어리들이 같은 방식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왔다. 처음에는 분노했고, 그 다음에는 슬퍼했으며, 이제는 그저 무덤덤해졌다.


문 밖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고 단호한 발걸음이었다. 곧 유키코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홋카이도에서 사백 년을 살아온 고참 페어리였다. 그녀의 날개는 이 땅의 눈송이처럼 완벽한 육각형의 기하학적 무늬를 띠고 있었고, 그 투명한 표면에는 미세한 얼음 결정들이 끊임없이 생성되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폐하."


유키코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형식적인 예의였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거리감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고, 입술은 일직선으로 굳어 있었다.


"요정원에서 폐하를 찾고 있습니다. 오무라 인더스트리 측에서 급히 면담을 요청했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가져온 제안이 시간에 민감한 사안이라고 합니다."


타이타니아는 루미나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어린 페어리의 숨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엘븐하임에서라면 요정원이 모든 것을 처리했을 것이다. 대요정이 조용히 다가와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보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직접 결정해야 했다.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직접.


"폐하께서 오시지 않으면 오무라 측이 발길을 돌릴지도 모릅니다."


유키코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었다. 오염 제거 기술. 그것 없이는 더 많은 페어리들이 루미나처럼 스러져갈 것이다. 유키코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타이타니아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키코는 타이타니아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미유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쓴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오무라 인더스트리, 아라사카 재벌의 토건 부문 자회사죠. 그들은 절멸전 이전부터 이 땅의 개발을 주도했어요. 홋카이도의 자연을 파괴하고, 콘크리트로 뒤덮은 주범들이에요. 그런데 이제 와서 오염 제거 기술을 들고 나타났다고요?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요."


복도 저편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유리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격앙된 목소리들이 뒤엉켰다. 먼저 들린 것은 고대 페어리어였고, 그 다음은 일본어, 그리고 다시 아시아 페어리어가 이어졌다. 두 언어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마치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또 시작이군요."


미유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한숨은 차가운 공기 중에 하얗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어제는 배급 문제였어요. 엘븐하임에서 온 페어리들은 열대 과일과 신선한 꽃꿀을 원했지만,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것은 통조림과 건조 식품뿐이었죠. 오늘은 거주 구역 문제겠네요. 남쪽 병동이 조금 더 따뜻하거든요. 방사능 오염도 상대적으로 적고요. 당연히 모두가 그곳을 원하죠."


타이타니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은 금이 가 있었고, 그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얀 눈송이들이 천천히, 마치 죽은 자의 재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순수해 보였지만, 그 하나하나에는 보이지 않는 독이 스며 있었다. 세슘-137, 스트론튬-90, 그리고 인간들이 남기고 간 수많은 죽음의 입자들이.


"폐하."


다이짱이 복도 끝에서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한때 대요정 오베론이었던 그는 대해적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영혼을 셋으로 갈라야 했고, 지금의 다이짱은 그 세 조각 중 하나였다. 분열의 상처는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다른 부분을 찾아 허공을 더듬기도 했다.


"GHQ 잔존 세력이 남쪽 검문소에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마치 동시에 세 명이 말하는 것처럼 미세한 울림이 겹쳐져 있었다.


"약 200명 정도의 병력입니다. 대부분 구식 자동소총으로 무장했지만, 일부는 대전차 로켓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들의 지휘관은 자신들을 '진정한 일본의 수호자'라고 부르며, 우리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타이타니아는 눈을 감았다. GHQ, 연합군 최고사령부. 한때 일본을 점령했던 그들의 잔당이 이제는 일본의 수호자를 자처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그리고 더 우려스러운 소식이 있습니다."


다이짱이 계속했다.


"요정원 내부의 회의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독립파 측에서는 GHQ 잔존 세력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주장하고 있지만, 신중론자들은 우리의 현 전력으로는 무리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양측 모두 폐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지만, 토론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타이타니아의 어깨가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요정원. 그들은 모두 그녀를 따라 이곳까지 온 충직한 신하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 폐하의 명확한 지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이짱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운 압박이 담겨 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젊은 페어리 전령이 헐떡이며 들어왔다. 그의 날개는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폐하, 긴급 상황입니다! 2층 대회의실에서 소란이 발생했습니다!"


전령의 목소리는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


"배급품 분배 문제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엘븐하임 출신 페어리들은 자신들이 익숙한 열대 과일과 신선한 식품을 요구했지만, 현지 페어리들은 현실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목소리가 높아지던 중에, 마침 오무라 인더스트리 대표단이 그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그들이 우리의 내부 불안정을 우려한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로 철수했습니다."


타이타니아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모든 것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모두가 그녀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 아래에서는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배경, 서로 다른 기대,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을 가진 페어리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고,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의 권위뿐이었다.


그녀는 루미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소녀의 호흡은 이제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죽음이 가까이 와 있었다. 그리고 이 소녀는 시작에 불과했다. 매일 더 많은 페어리들이 같은 방식으로 죽어갈 것이다. 오염된 대지가 정화되지 않는 한.


"폐하." 


유키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지 페어리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이 땅에서 수백 년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물론 폐하의 도착을 환영하고, 폐하의 권위를 인정합니다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엘븐하임 출신 페어리들이 요구하는 생활 방식은 이 땅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미유키도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오염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엘븐하임 출신 페어리들은 특히 이 땅의 방사능에 취약합니다. 그들의 몸은 깨끗한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그때,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어났다. 그것은 논리도 아니고, 경험도 아니었다. 순수한 직관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복잡한 매듭을 단순하게 잘라버리는 것처럼, 명쾌하고 직접적인 해답이었다..


"다이짱."


타이타니아의 목소리가 갑자기 명확해졌다.


"오무라 측 대표를 여기로 안내해 주세요. 바로 이 병실로요."


다이짱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세 개로 갈라진 의식이 동시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폐하, 그것은 외교 관례상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국빈을 병실로 안내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고, 게다가 이런 곳에서 협상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유키코도 동의하는 듯했다.


"폐하, 재고해 주십시오. 오무라는 우리의 절박함을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은 상인들입니다. 약점을 보이는 것은 협상에서 최악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타이타니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오만 년을 살아온 고대 존재의 지혜도 아니고, 노련한 정치가의 계산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순수함이었다. 모든 가식과 계산을 벗어던진, 날것의 진실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그들에게 직접 보여주겠어요. 거짓도, 가식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요. 그들도 생명의 소중함을 안다면, 분명 마음이 움직일 거예요."


그녀는 루미나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차가웠다. 너무나 차가워서 마치 이미 생명이 떠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미세한 맥박이 여전히 뛰고 있었다. 약하지만, 확실히 살아있었다.


"때로는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도 있어요."


---


십 분 후, 병실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세 명의 인간이었다. 가장 앞에 선 남자는 오무라 타케시, 오무라 인더스트리의 전무이사였다. 그의 양복은 흠 하나 없이 완벽했고, 구두는 거울처럼 빛났다. 마흔 중반의 나이였지만, 피곤함이 역력한 눈가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그의 뒤에는 비서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기술 고문으로 보이는 노신사가 따라왔다.


오무라는 병실에 들어서자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침대에 누워있는 작은 페어리 소녀에게 머물렀다. 일 초, 이 초. 그의 표정에 무언가가 스쳤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페어리 퀸 폐하."


오무라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어 송구합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특별히 이곳을 지정하신 이유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타이타니아는 루미나의 손을 잡은 채로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의 움직임은 우아했지만, 어딘가 서툴렀다. 마치 처음 무대에 선 배우처럼.


"오무라 대표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를 보세요. 루미나라고 합니다. 우리 종족의 미래예요. 하지만 지금, 이 아이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꾸밈도, 계산도 없는 순수한 감정이었다.


"매일 이런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오염된 대지, 방사능에 물든 공기, 썩어가는 마력. 우리 페어리들은 이런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어요. 우리에겐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무라는 천천히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루미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이 주머니로 향했다가, 작은 손수건을 꺼냈다. 그것으로 소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제 딸도 이 아이와 비슷한 나이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지만, 가끔은 걱정이 됩니다. 이 세상이, 우리가 물려줄 이 세상이 과연 아이들이 살아갈 만한 곳인가 하고요."


타이타니아는 그의 진심어린 행동에 감동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오무라 인더스트리는 절멸전 이후 오염 제거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해왔습니다."


오무라가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의 기술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 각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페어리들의 특수한 체질은 새로운 도전이 되겠지만, 함께 노력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 고문이 앞으로 나섰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는데, 그의 눈빛에는 학자 특유의 호기심이 빛나고 있었다.


"페어리의 마력 순환계는 정말 놀라운 구조입니다. 자연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나노 정화 기술과 흥미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가설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많은 연구와 실험이 필요할 것입니다."


타이타니아가 희망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우리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건가요?"


오무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표정은 신중했다.


"저는 거짓 희망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폐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많은 자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간의 깊은 신뢰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일이니까요."


비서가 서류 가방에서 문서를 꺼냈다. 그녀의 움직임은 효율적이고 정확했다.


"이것은 초기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입니다. 구체적인 조건들은 추후 협의를 통해 정하되, 일단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는 문서입니다."


다이짱이 문서를 받아 훑어보았다.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폐하, 이 문서는 검토가 필요합니다."


오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충분히 검토하시고, 필요하다면 수정 요청을 해주십시오. 우리는 일방적인 계약이 아닌, 상호 이익이 되는 파트너십을 원합니다."


타이타니아는 루미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소녀의 숨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이 아이뿐만 아니라, 더 많은 아이들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오무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제안이 있습니다. 정식 계약 전이라도, 긴급 의료 지원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보유한 휴대용 정화 장비 몇 대를 먼저 제공하겠습니다. 효과를 보시면, 그때 본격적인 협력을 논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타이타니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인가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오무라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 장비들은 매우 정밀한 기계입니다. 우리 기술진이 함께 상주하면서 운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페어리들의 마력이 기계에 미치는 영향도 관찰해야 하고요.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타이타니아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우리는 전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오무라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따뜻한 미소였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위급한 환자들부터 치료를 시작하고, 점차 범위를 넓혀가겠습니다."


그는 다시 루미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연민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이 아이도 반드시 살려내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오무라 일행이 떠난 후, 병실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타이타니아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만, 다이짱의 표정은 복잡했다.


"폐하, 그들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이릅니다."


"알아요, 다이짱.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다른 선택이 있나요?"


타이타니아는 루미나의 차가운 손을 쓰다듬었다.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려 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이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 먼저예요."


한편, 복도를 걸어가던 오무라는 비서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일 장비와 함께 데이터 수집 팀도 보내. 페어리들의 생체 정보와 마력 패턴,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치료가 가능한가요?"


오무라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우리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해. 그것이 신뢰를 얻는 방법이니까."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 속에 담긴 진짜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창밖의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얗게, 모든 것을 덮어버리듯이.

댓글 [ 2 ]

  프레빌
  32주 전
너무 쓰기 어려움.......... 진짜 전개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나아가야할지 감이 안잡힘.........
  순천시의이모씨
  31주 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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