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라 인더스트리의 휴대용 정화 장비가 도착한 것은 약속한 다음 날 새벽이었다.
동이 트기 전, 세상이 아직 어둠과 빛 사이의 회색 경계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트럭 세 대가 병원 앞마당에 도착했다. 엔진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가르며 울려 퍼졌는데, 그것은 마치 잠든 세계를 깨우는 경종 같았다. 트럭들은 묵직했다. 차체에는 오무라 인더스트리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로 "위험물 취급 주의"라는 경고 표시가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미 수십 명의 페어리들이 창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이는 3층 병실의 깨진 창문 너머로, 어떤 이는 복도 끝 큰 창 앞에서, 또 어떤 이는 계단참의 작은 창틀에 매달려서. 그들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대나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이었다. 마치 익사 직전의 사람이 떠내려오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것이 구원이 될지 혹은 또 하나의 실망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뻗을 수밖에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트럭의 뒷문이 열렸다. 금속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하얀 방호복을 입은 기술자들이 내렸다. 그들의 움직임은 정확했고, 기계적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해온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완벽하게 호흡이 맞았다. 그들의 헬멧 안으로 김이 서렸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추운 새벽 공기 속에서 그들의 숨결이 만들어낸 작은 구름이었다.
장비가 트럭에서 내려졌다.
처음 본 페어리들은 놀랐다. 장비는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다. 어떤 이들은 거대한 기계를,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한 복잡한 장치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타난 것은 은빛으로 빛나는 원통형 기계였다. 높이는 대략 성인 남자의 허리 정도였고, 직경은 두 팔로 감싸안을 수 있을 만했다.
하지만 작다고 해서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표면에는 미세한 회로 패턴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들은 너무나 정교해서 마치 거미줄처럼, 혹은 나뭇잎의 잎맥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면, 그 회로들은 단순한 새김이 아니라 실제로 미세하게 푸른빛을 내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빛은 맥동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의 심장박동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했다. 그 빛의 파장은 페어리들의 마력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더 차갑고, 더 기계적이며, 더 통제된 무언가였다.
기계의 상단에는 투명한 수정 같은 물질로 된 돔이 있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투명했지만, 특정 각도에서 보면 무지개빛이 은은하게 번졌다. 돔 안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겨 있었는데, 그것은 정지해 있지 않았다. 천천히, 마치 자체 의지를 가진 것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액체는 청록색이었다가 은빛으로, 다시 옅은 보라색으로 색을 바꾸며 흘러갔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최면에 걸릴 것 같았다.
기계의 측면에는 작은 디스플레이가 부착되어 있었다. 검은 화면 위로 녹색 글자들이 흐르고 있었다. 숫자들, 기호들, 알 수 없는 약어들이 끊임없이 갱신되었다. 그것은 마치 기계가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계산하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계 아래쪽으로는 여러 개의 포트가 있었다. 각각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가진 연결부들이었는데, 거기서 가느다란 튜브들이 나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튜브들은 반투명했고, 그 안으로 무언가가 흐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첫 번째 장비는 루미나의 병실에 설치되었다.
병실 문이 열렸을 때, 타이타니아는 이미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밤새 루미나 곁을 지켰다. 소녀의 호흡을 세고, 맥박을 확인하고,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그녀의 눈 아래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고, 손등에는 피로의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선명했다. 희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오무라의 기술진이 조심스럽게 장비를 들여왔다. 네 명의 기술자가 특수 카트를 이용해 기계를 운반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극도로 신중했다. 마치 폭발물을 다루듯이, 혹은 신생아를 안듯이, 조심스럽고 세심했다. 카트의 바퀴가 바닥과 마찰하며 작은 소리를 냈다. 끼익, 끼익. 그 소리가 병실의 정적을 채웠다.
타이타니아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작은 초승달 자국을 남겼지만, 그녀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모든 의식은 저 기계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희망이다.'
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만약 이것마저 실패한다면? 만약 루미나가? 그 뒤의 생각은 차마 이어갈 수 없었다.
기술자들이 장비를 침대 옆에 배치했다. 정확히 루미나의 오른쪽, 침대에서 50센티미터 떨어진 지점이었다. 그들은 레이저 측정기로 거리를 재고, 수평계로 기울기를 확인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다. 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수석 기술자가 디스플레이를 작동시켰다. 그의 손가락이 터치스크린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화면에 복잡한 그래프들이 떠올랐다. 파형, 수치, 색상으로 구분된 영역들. 기술자는 각 수치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의 눈빛은 집중되어 있었고, 이마에는 미세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환자의 생체 정보를 입력합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는 헬멧 내부 스피커를 통해 약간 왜곡되어 들렸지만, 그 안에 담긴 전문성은 선명했다.
또 다른 기술자가 루미나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센서가 들려 있었다. 센서를 루미나의 이마에 대었다. 삐, 하는 짧은 신호음이 울렸다. 화면에 숫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온, 맥박, 혈압, 그리고 페어리 특유의 마력 지수.
"마력 순환계 손상도 73%. 오염 농도 레벨 8. 생명 징후 위약하지만 안정."
기술자가 읽어 내려갔다.
"정화 프로토콜 알파-3 적용을 권장합니다."
"승인."
수석 기술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튜브들이 루미나의 몸에 연결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연결된 것은 이마였다. 작은 패치 형태의 센서가 부착되었고, 거기서 가느다란 튜브가 기계로 이어졌다. 다음은 가슴. 심장 위치를 정확히 겨냥한 센서. 그리고 날개의 기저부, 마력이 가장 집중된 곳. 마지막으로 양손목.
각 센서가 부착될 때마다 희미한 빛이 났다. 처음에는 파란색이었다가, 점차 녹색으로, 마지막에는 안정된 청록색으로 변했다. 빛들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그물망을 형성했다. 루미나의 작은 몸이 그 빛의 그물에 감싸였다. 마치 거대한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타이타니아는 숨을 죽였다. 그녀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루미나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소녀의 손은 너무나 작고 약했다. 마치 한 번 세게 쥐면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시작합니다."
수석 기술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손가락이 최종 버튼을 눌렀다.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1초, 2초, 3초. 타이타니아의 심장이 가슴 속에서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땀이 배어났다.
그리고 4초째에, 소리가 들렸다.
낮은 웅웅거림이었다. 그것은 기계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중심부의 동력원에서 시작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그것은 점차 커졌다. 웅웅거림은 진동으로 변했고, 진동은 공간 전체를 채웠다. 병실의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창문 유리가 공명하며 가느다란 음을 냈다.
수정 돔 안의 액체가 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리고 게으른 소용돌이였던 것이, 이제는 격렬한 회오리로 변했다. 액체는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한 초록색이었다. 마치 봄날 새싹의 색깔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점점 더 짙어졌다. 연두색에서 초록색으로, 초록색에서 에메랄드 빛으로, 마침내는 깊은 숲의 색처럼 진한 녹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미세한 점들이었다. 마치 먼지 같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먼지가 아니었다. 검은 입자들이었다. 아주 작은,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입자들. 하지만 그것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액체 속에서 포획되어 가라앉고 있었다.
"저것이 오염 물질들입니다."
한 기술자가 조용히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는 경외감에 차 있었다. 수백 번 이 과정을 지켜봤을 텐데도, 여전히 경이로워하는 듯했다.
"세슘-137, 스트론튬-90, 그리고 변질된 마나 결정체들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의 몸에서 빠져나와 무해화되고 있습니다."
타이타니아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검은 입자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처음에는 몇 개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늘어났다.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 그것들은 소용돌이치는 액체 속에서 춤을 추듯 회전하다가, 마침내 돔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거기서 그것들은 응집되어 작은 검은 덩어리를 형성했다.
루미나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센서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었다. 소녀 자신의 마력이었다. 오랫동안 오염에 눌려 침체되어 있던 그녀의 생명력이, 이제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빛은 약했다. 촛불보다도 더 가물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살아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병실 안의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인 채 지켜보았다. 타이타니아는 여전히 루미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녀의 무릎은 아팠다. 딱딱한 바닥에 오래 꿇어앉아 있던 탓에 감각이 없어져갔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 모든 것이 환상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기술자들은 계속해서 화면을 주시했다. 그들의 눈은 수치들을 쫓아 빠르게 움직였다. 때로는 무언가를 조정했다.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누르거나, 터치스크린에 새로운 명령을 입력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외과의사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정확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생명을 다루는 이의 신중함이 배어 있었다.
사십 분이 지났다.
그리고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루미나의 날개였다. 한때 무지개빛으로 빛났을 그 날개. 하지만 지금은 가장자리부터 검게 변색되어 있던 그 날개. 검은색이 조금씩, 정말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너무나 미세한 변화여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타이타니아는 보았다. 그녀는 지난 며칠 동안 저 날개를 수없이 바라봤었다. 절망 속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오십 분째.
루미나의 호흡이 변했다. 그것은 여전히 약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강했다. 더 규칙적이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폭이 조금 더 커졌다. 얕디얕던 숨이, 이제는 조금 더 깊어졌다.
한 시간이 지났다.
"1차 정화 사이클 완료."
수석 기술자가 발표했다.
"오염도 27% 감소. 마력 순환계 회복률 15%. 환자 상태 안정. 프로토콜을 계속 진행합니다."
기계는 계속 작동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다.
한 시간 삼십 분.
두 시간.
세상은 병실 밖에서 계속 돌아갔다. 아침이 밝았고, 다른 페어리들이 복도를 오갔으며, 어디선가 식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병실 안에서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이 작은 소녀와 그녀를 치료하는 기계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두 시간 사십오 분.
그리고 마침내.
루미나의 눈꺼풀이 떨렸다.
그것은 너무나 미세한 움직임이어서, 타이타니아는 처음에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눈꺼풀이 다시 떨렸다. 이번에는 더 강하게.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려는 사람처럼.
천천히, 마치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듯이, 루미나의 눈이 열렸다.
처음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희미하게 흐려져 있었고, 천장의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몇 초가 지났다. 그녀의 눈동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타이타니아와 마주쳤다.
인식의 빛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흐릿하던 눈동자가 선명해졌다. 그녀는 타이타니아를 보고 있었다. 정말로 보고 있었다.
"폐하..."
루미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가늘었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잎 소리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처럼.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목소리였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의지를 가진 존재의 목소리였다.
타이타니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목구멍이 메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루미나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 작고 차가웠던 손이, 이제는 조금 따뜻해지고 있었다.
"잘 견뎠어요, 루미나."
타이타니아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당신은 살 거예요."
루미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약했지만, 진실했다.
병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이는 소리 내어 울었고, 어떤 이는 서로를 껴안았다. 기술자들조차도 헬멧 안에서 눈가를 닦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전문가였다. 수많은 치료를 진행해왔고, 수많은 성공을 경험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이 작은 기적 앞에서, 그들도 단지 인간일 뿐이었다.
미유키는 벽에 기댄 채 천천히 주저앉았다. 그녀의 다리가 떨렸다. 긴장이 풀리자, 그동안 억눌렀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녀는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그리고 조용히 울었다. 기쁨의 눈물인지, 안도의 눈물인지, 혹은 그동안 견뎌야 했던 절망의 무게에 대한 눈물인지,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희망이 피어올랐다. 진짜로, 실질적으로. 루미나는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루미나가 살 수 있다면, 다른 이들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들은 모두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왕은 아직 몰랐다. 이 희망이 어떤 대가 위에 세워질 것인지. 이 구원이 어떤 희생을 요구할 것인지.
그녀는 아직 순수했다.
그리고 그 순수함은, 곧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시험받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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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났다.
오무라 인더스트리의 정화 장비는 놀라운 효과를 보였다. 루미나를 포함한 초기 치료 대상자 열다섯 명 중 열셋이 호전되었다. 기적이라고 부를 만했다. 며칠 전만 해도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앉을 수 있었고,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며, 어떤 이는 침대에서 내려와 몇 걸음 걸을 수도 있었다.
그들의 날개에서 검은색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오래된 상처의 흉터처럼, 한때 오염이 있었다는 증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퍼지지 않았다. 그것은 멈췄다. 그리고 조금씩, 정말 조금씩이지만 줄어들고 있었다.
마력 순환계가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페어리에게 마력 순환계란 인간의 혈액 순환계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막히면, 생명이 멈췄다. 하지만 이제 그 막힌 통로들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마력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늘고 약한 물줄기처럼. 하지만 그것은 점점 강해질 것이었다.
호흡은 안정되었다. 더 이상 그들은 공기를 갈구하며 헐떡이지 않았다. 가슴은 규칙적으로 오르내렸고, 산소는 폐를 가득 채웠다. 의식도 명료해졌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이름을 기억했고, 주변 사람들을 알아보았으며, 어제와 오늘을 구분할 수 있었다.
병원의 분위기가 변했다. 며칠 전만 해도 이곳은 장례식장 같았다. 조용하고, 어둡고, 절망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복도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간호사들의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창문이 열렸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비록 그 공기가 여전히 차갑고 오염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변화를 상징했다.
환자들의 가족이 면회를 왔다. 그들은 침대 옆에 앉아 손을 잡았다. 이야기를 나눴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으면 어디 가고 싶어?" "다시 날 수 있게 되면 무얼 할 거야?" 그런 질문들이 오갔다. 일주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질문들이었다.
타이타니아는 매일 병실을 순회했다. 그녀는 각 환자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손을 잡아주었다. 희망을 전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올랐다. 진심 어린 미소였다. 그것을 본 페어리들도 미소 지었다. 여왕이 미소 짓는다면, 세상은 괜찮아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였다.
그리고 그 문제가 명확해진 것은, 일주일 후 열린 요정원 긴급 회의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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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은 넓었다. 타원형의 거대한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었고, 그 주위로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의자는 총 서른 개였다. 요정원의 정식 의원 수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배석자들, 보좌관들, 전문가들이 벽을 따라 서 있었다. 이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천장은 높았다. 원래 이곳은 대강당이었다. 인간 의사들이 강의를 듣고, 학회를 개최하던 곳. 하지만 지금은 페어리 왕국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벽에는 여전히 인간들이 남긴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손씻기의 중요성", "백신 접종 안내", "금연 캠페인". 묘한 대비였다. 과거 문명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문명이 씨앗을 틔우고 있었다.
창문은 크고 많았다. 원래는 밝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창밖으로 회색빛 하늘만이 보였다. 그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여전히, 끊임없이, 지칠 줄 모르고. 하얀 눈송이들이 창유리에 부딪혔다가 녹아 흘러내렸다. 마치 세상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테이블 위에는 문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보고서, 통계 자료, 그래프, 지도. 각 의원 앞에도 같은 자료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읽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엇이 논의될 것인지.
타이타니아는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의자는 다른 것보다 조금 더 높았고, 조금 더 화려했다. 여왕의 자리. 하지만 그 위에 앉은 그녀는 작아 보였다. 마치 너무 큰 옷을 입은 아이처럼.
다이짱이 일어났다. 그의 앞에는 특히 많은 문서가 쌓여 있었다. 그는 페어리 왕국의 재정과 행정을 총괄하는 대신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는 가장 끔찍한 진실을 보고해야 했다.
"현재 홋카이도 전역에 있는 페어리는 대략 십만 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분열된 영혼 특유의 다층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세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 세 목소리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는 단 하나의 감정만을 전달하고 있었다.
절망이었다.
"이 십만 중에서..."
그는 첫 번째 페이지를 넘겼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회의실의 정적을 깼다.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약 삼만 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모두의 얼굴이 긴장되어 있었다.
"조만간 치료가 필요해질 경증 환자는 오만 입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리고 현재 건강한 이들은 이만 에 불과합니다."
이만 명.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이만 명도, 시간이 지나면 경증 환자가 될 것이었다. 경증 환자는 중증 환자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중증 환자는...
다이짱은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무라 인더스트리가 제공한 장비는 여섯 대입니다."
그는 천천히, 명확하게 발음했다. 각 단어에 무게를 실었다.
"각 장비는 한 명을 완치하는 데 평균 일주일이 걸립니다."
회의실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작게 신음했다. 다이짱은 계속했다.
"하루에 쉬지 않고 돌린다 해도..."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마치 다음 문장을 말하기가 두려운 것처럼.
"한 대당 일 년에 약 52명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52명. 일 년에. 한 대당.
수학은 간단했다. 너무나 간단해서,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잔인했다. 수학은 항상 감정이 없었다. 그것은 그저 진실을 말할 뿐이었다.
"삼만 명의 중증 환자를 모두 치료하려면..."
다이짱은 계산기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불필요한 제스처였다. 그는 이미 계산했었다. 수없이 많이.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며. 하지만 수학은 변하지 않았다.
"96년이 걸립니다."
그 숫자가 공기 중에 떠올랐다. 96년. 거의 한 세기.
타이타니아는 그 숫자를 머릿속으로 반복했다. 96년. 루미나는 몇 살인가? 인간 나이로 치면 열 살쯤? 페어리의 수명은 길었다. 수백 년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96년은... 루미나가 치료를 받고, 성장하고, 어엿한 하나의 베테랑 전투원이 되었을 때쯤이 되어서야 마지막 환자가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희망적인 시나리오였다. 왜냐하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다이짱이 또 다른 보고서를 펼쳤다. 이번 것은 붉은색 표지였다. 긴급 등급의 문서였다.
"이것은 단지 즉각적 치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회의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모두의 눈이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장비는 이미 오염된 페어리를 치료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오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이해하기 시작했다.
"매일 더 많은 페어리들이 병에 걸리고 있습니다. 현재 건강한 이만 명도, 한 달 후면 경증 환자가 될 것입니다. 경증 환자 오만 명도, 석 달 후면 상당수가 중증으로 악화될 것입니다."
그는 그래프를 하나 꺼냈다. 빨간 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그래프였다.
"우리는 구멍 난 배에 물을 퍼내고 있는 셈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퍼내도, 배는 계속 가라앉습니다. 우리가 치료하는 속도보다, 병에 걸리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또 다른 침묵이 흘렀다. 이번 침묵은 첫 번째보다 더 무거웠다.
유키코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추가 장비를 요청할 수는 없을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오무라 측에 더 많은 기계를 제공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열 대, 스무 대..."
다이짱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움직임은 무겁고 슬펐다.
"이미 타진해보았습니다."
그는 또 다른 문서를 꺼냈다. 이번에는 오무라 인더스트리의 공식 서신이었다.
"오무라의 답변은 명확했습니다. 이 장비들은 절멸전 이전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당시의 초정밀 부품, 특수 합금, 그리고 잃어버린 제조 공정이 필요합니다."
그는 서신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의 기술력으로는 이 장비를 재생산하기가 지극히 어렵습니다. 여섯대는 우리가 가진 기기의 3할이며 그마저도 원래는 자체 연구용으로 보관하던 것이었습니다. 더 제공할 수 있는 장비는 없습니다.'"
현지 페어리 대표인 사치코가 일어났다. 그녀는 홋카이도에서 삼백 년을 살아온 얼음의 페어리였다. 은발에는 서리가 낀 것처럼 하얀 결정들이 반짝였다.
"장비와 마법을 함께 사용하면 치료 속도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엘븐하임 바깥의 우리 홋카이도 페어리들은 치유 마법에 능숙합니다. 비록 엘븐하임 출신들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미유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사치코의 부하 중 한 명이었고, 가장 뛰어난 치유 마법사 중 하나였다.
"이미 시도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괴감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어요. 오히려...오히려 장비의 작동을 방해했죠."
그녀는 일어나서 허공에 작은 마법진을 그렸다. 푸른빛과 은빛의 선들이 교차했다.
"정화 촉매제가 우리의 마력과 간섭을 일으켰습니다. 두 에너지가 서로 충돌하면서 불안정해졌어요. 환자의 몸 안에서 마력의 폭주가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마법진이 흐트러졌다.
"한 환자가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심장이 멈췄어요. 간신히 소생시켰지만... 최악의 경우 환자에게 해가 될 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시도를 중단했습니다."
마법진이 사라졌다. 미유키는 다시 앉았다.
또 다른 침묵이 흘렀다. 이번 침묵은 두 번째보다 더 무거웠다.
다이짱이 다시 일어났다. 그는 마지막 보고서를 꺼냈다. 검은색 표지였다. 장례식 고지서의 색깔이었다.
"사망률 통계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기계적이었다. 감정을 억누르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매달 오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숫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 달, 47명이 사망했습니다."
47명. 한 달에. 하루에 약 1.5명.
"이번 달은 현재까지..."
그는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23일째인데, 이미 63명입니다."
63명. 23일에. 하루에 약 2.7명.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만약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다이짱은 계산기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잘못 눌렀다가 다시 지웠다.
"다음 달에는 80명 이상이 죽을 것입니다. 그 다음 달에는 100명. 석 달 후에는 150명."
숫자들이 계속 커졌다. 그래프의 빨간 선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 년 후에는..."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3년 후에는..."
다이짱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3년 후에는 페어리 인구의 상당수가 사라져 있을 것이다. 십만 명이 오만 명이 될 것이고, 오만 명이 이만 명이 될 것이며, 마침내는...
회의실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이번 침묵은 이전의 그 어떤 침묵보다도 무거웠다. 그것은 선택의 무게였다. 불가능한 선택, 해서는 안 될 선택,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선택의 무게였다.
어떤 의원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어떤 의원은 천장을 응시했다. 어떤 의원은 눈물을 닦았다. 어떤 의원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타이타니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송이들이 끝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각각의 눈송이는 아름다웠다. 완벽한 육각형의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빛을 받으면 무지개처럼 반짝였다. 자연의 경이였다. 기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죽음이었다. 각각의 눈송이 안에는 방사성 입자가 담겨 있었다. 보이지 않는 독이 스며 있었다. 세슘-137, 스트론튬-90, 그리고 인간들이 남기고 간 수많은 죽음의 입자들이. 그 아름다운 눈송이들이 땅에 쌓이고, 녹고, 토양에 스며들면서, 홋카이도 전체를 천천히 죽이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욱 슬펐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타이타니아의 목소리가 회의실의 정적을 깼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강철 같은 결의였다. 타오르는 결단이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우리는 배에서 물을 퍼낼 것이 아니라 구멍 자체를 막아야 합니다."
그녀는 창밖을 가리켰다.
"이 땅을, 홋카이도 전체를 정화해야 합니다. 대지가 깨끗해지면, 더 이상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이미 병든 이들을 천천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논리는 완벽했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주세요,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 종족은 말 그대로 끝나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