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서명이 끝난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동틀 무렵 오무라 인더스트리의 트럭들이 홋카이도의 경계를 넘었다. 어둠이 아직 물러나기를 거부하던 시간이었다. 새벽 안개 속에서 헤드라이트가 희미하게 번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운전사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피로가 새겨져 있었지만 그 피로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자들의 공허함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자들의 무게였다.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은 것이 아니라 돌아갈 길을 만드는 중이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열 대의 트럭이 도착했다. 그 규칙성은 여전히 시계처럼 정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죽음의 행진이 아니었다. 이것은 건설의 박자였다. 재건의 리듬이었다. 그들은 짐을 내렸다. 무거운 상자들이 땅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소리는 관이 무덤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초석이 놓이는 소리였다. 미래가 대지에 뿌리내리는 소리였다.
짐칸 속에는 건설 장비가 실려 있었다. 기계들은 거대했다. 사람 키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땅을 살리는 도구였다. 특수 제작된 차량 위에 단단히 결박되어 도착한 그것들은 마치 잠든 거인처럼 보였다. 곧 깨어나 일할 거인들이었다.
거대한 크레인이 동원되었다. 노란색 팔이 천천히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갔다. 유압 실린더에서 쉬익 하는 소리가 났다. 거대한 짐승의 신음이 아니었다. 근육이 힘을 내는 소리였다. 크레인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금속이 삐걱거렸다. 케이블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기계가 공중에 매달렸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땅으로 내려왔다. 그것이 땅에 닿는 순간 대지가 약간 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무덤이 파이는 것이 아니었다. 기초가 다져지는 것이었다.
전쟁 이후 아마 최초로 무언가가 건설되고 있었다. 부수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쓰다가 버릴 것도 긴급하게 때우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인프라였다. 발전소가 세워지고 거주 구역이 계획되었다. 정수 장치가 설치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지켜보았다. 창문 너머로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희망도 함께 있었다. 가느다란 희망이었지만 희망이었다. 십 년 만에 처음 보는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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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일렌트는 정화 예정 지역의 가장자리에 온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온실은 유리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방사능을 차단하면서도 태양광은 통과시키는 특수 필름이 사용되었다. 그 필름은 햇빛 아래에서 무지개 빛을 반사했다. 인공적인 무지개였다. 과학의 무지개였다. 하지만 그것도 무지개였다. 약속의 표시였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 같았다.
온실의 규모는 축구장 네 개를 합친 것보다 컸다. 먼저 철골 구조물이 세워졌다. 용접공들이 높은 비계 위에서 작업했다. 두꺼운 장갑과 용접 마스크를 쓰고 토치를 다루었다. 토치에서 파란 불꽃이 나왔다. 섭씨 수천 도의 열이 발산되었다. 철이 녹았다. 붉게 달아올랐다가 서서히 식었다. 단단해졌다. 용접 부위에서 불티가 튀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불꽃들은 어둠 속에서 떨어지는 별처럼 보였다. 땅에 닿기 전에 사그라들었다.
밤이 되면 온실 건설 현장은 기묘한 광경을 연출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뀐 세계처럼 보였다. 별들이 아래로 떨어지고 어둠이 위에서 군림하는 세계였다. 용접공들은 밤새 일했다. 그들의 그림자가 불빛에 길게 늘어났다. 거대한 그림자들이 철골 구조물 위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온실 내부에는 흙을 사용하지 않는 수경 재배 시설이 설치되었다. 나중에 확장한 시설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홋카이도의 흙은 이미 죽어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되어 어떤 생명도 품을 수 없었다. 분자 구조 자체가 변질되어 무기질의 시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모든 식물은 물과 영양액만으로 키워져야 했다. 흙 없이 자라야 했다. 뿌리를 내릴 땅 없이 공중에 매달려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자랐다. 그것이 중요했다. 생명은 방법을 찾았다.
복잡하게 연결된 파이프 시스템이 온실 전체를 가로질렀다. 펌프가 작동할 때마다 물이 파이프를 통해 흘렀다.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인공적인 생명의 맥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맥박이었다. 거짓 심장이지만 그래도 심장이었다. 유전자 조작된 품종들은 자연에서는 불가능한 속도로 자랐다. 씨앗이 며칠 만에 싹을 틔웠다. 일주일이 지나자 잎이 펼쳐졌다. 스무 날이 되기 전에 이미 수확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기적이었다.
야마구치는 매일 온실을 순회했다. 그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신발을 신었다. 밑창이 넓고 두꺼웠다. 그가 걸어갈 때마다 바닥이 삐걱거렸지만 파이지는 않았다. 그는 식물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관찰했다. 손으로 잎을 만졌다. 줄기를 눌러보며 성장 상태를 확인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항상 짓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의 눈도 웃고 있었다.
그는 이것이 사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도주의적 행위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페어리들은 먹어야 했고 인간들도 먹어야 했다. 배고픔은 가장 확실한 시장이었다.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었다. 그는 온실을 나서며 부하 직원에게 지시했다. 생산량을 늘리라고 했다. 더 많은 온실을 지으라고 했다. 더 많은 식물을 키우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에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물론 돈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더 큰 뜻이 있었다. 미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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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하임은 삿포로 외곽의 언덕 위에 요새를 건설했다. 언덕은 전략적으로 완벽한 위치였다.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접근하는 적을 멀리서부터 발견할 수 있었다. 방어하기에 이상적인 지형이었다. 콘크리트 벙커가 땅 위로 솟아올랐다. 벽의 두께는 어른 팔을 여러 번 벌려도 모자랄 만큼 두꺼웠다. 포탄의 직격을 받아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철근이 콘크리트 속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외벽에는 방탄 처리가 되어 있었다.
감시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탑의 꼭대기에는 강력한 탐조등이 설치되었다. 밤이 되면 그 탐조등이 돌아가며 주변을 비추었다. 하얀 빛의 기둥이 어둠을 가르며 천천히 회전했다. 그 빛에 비친 눈송이들은 별똥별처럼 빛났다. 탐조등 옆에는 중기관총이 고정되어 있었다. 총구는 항상 밖을 향하고 있었다. 탄띠가 장전되어 있었다. 언제든 발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영이 건설되었다. 병영 내부는 춥고 어두웠다. 이층 침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각 침대마다 얇은 담요 한 장씩이 놓여 있었다. 훈련장도 만들어졌다. 장애물 코스에는 철조망과 나무 벽과 진흙 웅덩이가 설치되었다. 사격장에는 인간 형상의 표적들이 세워져 있었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다. 그 새들도 이미 변이되어 있었다. 깃털이 이상하게 자라 있었고 눈빛이 흐렸다.
마츠모토는 매일 현장에 나왔다. 그는 단순히 지시만 내리는 감독관이 아니었다. 직접 작업복을 입고 작업자들과 함께 땅을 팠다. 삽을 들고 얼어붙은 흙을 깼다. 시멘트 자루를 어깨에 메고 날랐다. 그의 군복은 진흙과 시멘트 가루로 더러워졌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작업자들은 그를 무서워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냉혹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를 존경했다. 그가 그들보다 더 많이 일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추위를 견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자신이 만드는 요새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의 명령은 다른 무게를 지녔다. 마츠모토는 밤이 깊어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막사에서 자지 않고 건설 중인 벙커 안에서 잤다. 콘크리트 바닥 위에 담요 한 장을 깔고 누웠다. 그의 잠은 얕았고 꿈은 어두웠다. 꿈속에서 그는 전쟁을 보았다. 다가올 전쟁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 기회를 위협하는, 일본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기회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여길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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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는 삿포로 시내의 높은 건물들 옥상마다 철제 안테나 탑을 세우기 시작했다. 안테나들은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갔다. 케이블들이 그것들을 연결했다. 케이블은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와 지상을 따라 깔렸다. 눈이 내리면 케이블이 묻혔다. 눈이 녹으면 다시 드러났다. 전파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호가 약했다. 잡음이 많았고 목소리가 희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호는 점점 강해졌다. 선명해졌다. 어느 날 오후 라디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NHK 홋카이도입니다. 방송을 재개합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얼어붙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소리 내어 울었다. 어떤 이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자신들이 완전히 잊혀지지 않았다는 확인이었다. 누군가 아직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전파는 보이지 않았지만 존재했다. 목소리는 멀리서 왔지만 도달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쿠로다는 건물 세 개 층을 개조하여 방송국을 만들었다. 스튜디오와 편집실과 송출실이 각각 다른 층에 자리 잡았다. 절멸전 이전에 사용되던 낡은 장비들을 수리하고 개조하여 다시 작동시켰다. 마이크는 녹이 슬어 있었다. 닦아내면 여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믹서는 버튼 몇 개가 빠져 있었다. 하지만 기본 기능은 작동했다. 송신기는 부품을 교체해야 했다. 안테나는 새로 설치해야 했다.
그는 밤낮없이 일했다. 손가락이 까졌다. 눈이 충혈되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뉴스가 송출되었다. 날씨 예보가 전해졌다. 공지사항이 발표되었다. 페어리 왕국의 성명도 함께 방송되었다. 사람들이 라디오 앞에 모여들었다. 정화 진행 상황과 안전 지역 정보와 배급 일정을 알려주는 그 목소리는 생명줄이었다. 정보를 가진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그 목소리는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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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정화 의식은 첫 번째보다 더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삿포로 북쪽의 평원 한가운데에 오백 미터 사방의 구역이 선택되었다. 그곳의 대지는 죽어 있었다. 토양은 단순한 오염을 넘어서 분자 구조 자체가 방사능에 의해 변질되어 있었다. 더 이상 어떤 생명도 품을 수 없는 무기질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발로 밟으면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손으로 만지면 텁텁한 느낌이 났다. 죽은 땅의 촉감이었다.
그 죽은 땅 위에 거대한 원형의 마법진이 새겨졌다. 직경이 이백 미터에 달하는 그 마법진은 수십 명의 페어리가 사흘 밤낮을 작업하여 완성한 것이었다. 마법진 안에는 수십 개의 작은 원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 원들을 잇는 선들은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을 이루었다. 각 선은 은가루와 수정 가루를 정확한 비율로 섞은 특수한 혼합물로 그어져 있었다. 달빛을 받으면 그 선들은 희미하게 빛났다. 마치 땅 위에 별자리를 새겨 넣은 것처럼 보였다.
사치코가 마법진의 구조를 점검했다. 그녀는 밤새 마법진을 따라 걸으며 각 선의 연결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끊어진 곳이 있으면 의식은 실패할 것이었다. 아니 실패보다 더 나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통제되지 않은 마법은 참여자들을 죽일 수 있었다. 시로와 아카시는 의식에 참여할 인원들을 배치했다. 페어리들은 마법진의 중심부에 섰다. 인간들은 외곽을 둘러쌌다.
천 명의 인간이 마법진의 가장자리에 줄지어 섰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지원했다고 서류에 기록되어 있었다. 각자의 서명이 있었다. 확인 도장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자발성이 아닌 체념이 새겨져 있었다. 선택이 아닌 필연이 새겨져 있었다. 두려움과 간절함이 한꺼번에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일부에게는 결의가 존재했다.
어떤 이는 가족을 위해 왔다. 병든 아내와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 나누기로 결심했다. 단지 조금만 나누면 된다고 믿었다. 어떤 이는 더 나은 식량 배급을 약속받았다. 한 달치 쌀과 통조림과 담요가 보장되었다. 생존의 대가였다. 어떤 이는 단지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에 왔다.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금 피곤할 뿐이라고 했다. 그들은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믿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이번에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수명이 단축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왔다. 그것이 중요했다. 알면서도 왔다.
의식이 시작되었다. 페어리들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대 엘프어로 된 그 주문은 인간의 귀에는 아름다운 노래처럼 들렸다. 선율이 있었다. 리듬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을 빼앗는 주문이었다. 존재의 근원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 금기의 마법이었다. 그들의 옛 주인들조차 금기시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 없었다. 오직 인간과 페어리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남아야 했다.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빛났다. 그리고 점점 더 밝아졌다. 은빛 선들이 먼저 빛났다. 이어서 작은 원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전체 마법진이 하나의 거대한 빛의 원을 이루었다.
은빛 빛줄기가 인간들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눈에 보였다. 마치 안개처럼 그들의 피부에서 피어올라 공기 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영혼처럼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 빛줄기들은 마법진을 향해 흘러갔다.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이 흘러갔다. 피가 심장으로 돌아가듯이 모여들었다. 보이지 않는 피였다. 생명이라는 이름의 피였다.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주었다. 강요가 아니라 선택으로 주었다.
인간들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속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입술에서 혈색이 사라졌다.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살아있다는 증거로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 심장 박동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땅에 무릎을 대고 손을 짚었다. 온몸이 떨렸다. 어떤 이는 더 심하게 반응했다. 완전히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죽었다.
심장이 멈췄다. 숨이 끊어졌다. 조용히 고통 없이 죽었다. 마치 잠드는 것처럼 죽었다. 하지만 깨어나지 않는 잠이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잠이었다. 그들의 몸에서 마지막 빛줄기가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차가워졌다. 빠르게 차가워졌다.
빛이 땅으로 스며들었다. 추출된 생명 에너지가 마법진을 통해 대지로 흘러 들어갔다. 회색빛 대지가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점점 더 강하게 떨렸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었다. 방사능이 정화되고 있었다. 분자 구조가 재배열되고 있었다. 죽은 땅이 다시 생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식은 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페어리들의 주문 소리는 지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인간들의 신음 소리는 점점 약해졌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운 신음이었다. 그리고 점점 더 희미해져서 마침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마법진의 빛은 점점 더 밝아졌다. 정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다.
주문이 끝났다. 빛이 사라졌다. 마법진이 어두워졌다. 침묵이 흘렀다. 깊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마치 죽음 자체가 내려앉은 것 같은 침묵이었다. 페어리들도 인간들도 모두 지쳐 있었다. 어떤 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떤 이는 서 있을 힘도 없어 쓰러졌다.
시로가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정화된 땅으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측정기의 전원을 켰다. 소리가 없었다. 째각거리는 경고음이 들리지 않았다. 수치판을 확인했다. 수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위험 수준 아래로 떨어졌다. 경고 수준 아래로 떨어졌다. 안전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땅을 만졌다. 장갑을 벗었다. 맨손으로 흙을 만졌다. 땅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달랐다. 죽은 땅의 차가움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땅의 차가움이었다.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땅이었다.
"또 다시 성공했습니다. GHQ에게 협력 지속 의사를 물어보세요."
시로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성공의 기쁨이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감정이었다. 죄책감이었을 수도 있고 안도감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둘 다였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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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하야시 장군이 직접 정화 지역을 방문했다. 그는 혼자 오지 않았다. 참모진과 기술자들과 의료진을 대동했다. 수십 명의 인원이 트럭에 나누어 타고 도착했다. 그들은 정화된 땅을 샅샅이 조사했다.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조사했다.
토양 샘플을 여러 지점에서 채취했다. 깊이를 달리하여 표층과 심층의 샘플을 모두 수집했다. 방사능 수치를 측정했다. 측정 장비를 땅 위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모든 데이터를 기록했다. 의사들은 의식에 참여했던 인간들을 하나하나 검진했다. 혈압을 재고 맥박을 확인했다. 동공 반응을 살펴보았다. 모든 데이터가 수집되었다. 모든 것이 서류에 기록되었다. 숫자와 그래프와 도표로 정리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방사능 수치는 안전 수준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과 페어리가 살아갈 수 있는 수준까지 낮아졌다. 참여자들은 피로하고 약해져 있었다. 어떤 이는 걷기조차 힘들어했다. 어떤 이는 계속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살아만 있다면, 그들은 의사들의 진단에 따르면 그들은 충분한 영양 공급과 휴식을 취하면 한 달 정도 후에는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잃은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수명은 단축되었다. 얼마나 단축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무시할 수 있었다. 아니 무시해야만 했다.
하야시 장군은 이틀 동안 정화 지역에 머물렀다. 그는 임시로 설치된 막사에서 잤다. 좁고 추운 막사였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낮 동안 그는 참여자들과 개별적으로 면담했다. 일대일로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왜 지원했는지를 물었다. 그들이 무엇을 느꼈는지를 물었다. 그들이 다시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어떤 이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다시 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절대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장군은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불만도 들었다. 희망도 들었다. 절망도 들었다. 그리고 그는 결정을 내렸다.
사흘 후 GHQ 본부에서 회의가 열렸다. 장군과 고위 참모들과 페어리 대표들이 모였다. 회의실은 좁고 추웠다. 건물의 난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두꺼운 군용 코트를 입은 채 회의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은 낡았다.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정화 작업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수십 장의 문서와 사진과 도표가 파일에 담겨 있었다. 참석자들은 그 자료들을 하나씩 검토했다. 침묵 속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요정들의 말대로 효과는 확실한거 같더군."
하야시 장군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피로가 묻어났다.
"오염된 땅과 공기 그리고 물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만 우리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야. 오늘 직접 현장을 본 결과는 상상이상이었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송이들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창문에 부딪혀 녹아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명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유일한 문제지만... 하지만 그것 역시 불가피하지. 그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지금 상황에서 이대로 가면 우리는 모두 죽을 거야. 방사능에 서서히 중독되어 고통스럽게 죽어갈 거야. 아이들이 먼저 죽을 거고 그 다음은 노인들일 거고. 그리고 결국 우리 모두가 죽을 거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면 살 수 있어. 수명이 조금 짧아지겠지만 그래도 살 수 있다고. 지난 십 년간 간신히 버텨내기만 했던 때와는 달라. 그때는 무작정 사람들을 동원해서 보호구 하나 제대로 주지 못하고 오염을 치우라고 했지. 하지만 이건 달라. 적어도 이건 진짜야. 이건 효과가 있어"
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쳤다. 둔탁한 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테이블 위의 물잔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분노의 소리가 아니었다. 결의의 소리였다.
"그래서 나는 페어리들에게 전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더 이상 가면을 쓰거나 저들의 속내가 무엇이냐 하면서 의심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에게 배신당하더라도 나는 이 희망에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했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진짜 희망을 봤고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미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실이 술렁였다. 참모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장군님. 지난 시청사에서의 회담에서 참관해본 입장으로서 감히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기업들의 대표단조차 요정 측에 아주 관대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 전후의 지옥도에서도 아득바득 자기들 살겠다고 욕망을 드러냈던 놈들이 이번에는 그 속내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냥 모든 것을 내어줬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그 소일렌트조차 말입니다."
한 참모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용기있게 의견을 개진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렇다면 우리도 더 이상 뒤쳐질 수는 없지"
장군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페어리측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하게, 그리고 우리는 정화작업 동원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한다. 단, 여왕은 알지 못하게, 그들의 처음 요구조건이 그것이었으니깐"
그는 회의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각 참모의 눈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서 같은 것을 보았다. 피로와 두려움과 희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의를 보았다. 살아남겠다는 결의를 보았다. 아니 살겠다는 결의를 보았다. 단순히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사는 것. 그 결의를 보았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십 년 동안 우리는 죽지 않기 위해 싸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살기 위해 싸울 수 있습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십니까? 죽지 않는 것과 사는 것. 그 사이에는 세상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무거운 침묵이 아니었다. 생각하는 침묵이었다. 이해하는 침묵이었다. 받아들이는 침묵이었다.
"그렇다면 시작합시다. 홋카이도를 살려냅시다. 일본을 살려냅시다. 우리 모두를 살려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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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났다.
홋카이도는 변하고 있었다. 천천히지만 확실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정화된 땅이 조금씩 늘어났다. 처음에는 백 미터 사방이었던 것이 이제는 킬로미터 단위로 확장되고 있었다. 회색빛 죽음의 땅이 조금씩 생명의 색을 되찾고 있었다. 정화된 구역은 지도에 초록색으로 표시되었다. 그 초록색 영역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을 보는 것은 희망적인 광경이었다.
페어리들이 그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병원의 좁고 추운 복도를 떠나 정화된 땅 위에 천막을 쳤다. 천막은 임시 주거지였다. 바람이 불면 흔들렸고 눈이 내리면 무게를 견디지 못해 처지곤 했다. 춥고 불편했다. 하지만 병원보다는 나았다. 무엇보다 공간이 있었다. 개인적인 공간이 있었다. 프라이버시가 있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있었다. 밤에는 모닥불을 피웠다. 불꽃이 어둠을 밝혔고 따뜻함을 주었다. 페어리들은 불 주위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래전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조금씩 돌아오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농사가 시작되었다. 페어리들이 마법을 사용했다. 정화된 땅을 축복하고 씨앗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성장 마법이었다. 고대부터 엘프들이 사용해온 전통적인 마법이었다. 자연의 순환을 빠르게 하고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마법이었다. 씨앗이 빠르게 자랐다. 일주일 만에 작은 싹이 흙을 뚫고 나왔다. 두 주일 만에 잎이 펼쳐졌다. 세 주일 만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적 같았다. 죽은 땅에서 생명이 자라나고 있었다.
첫 수확이 이루어졌을 때 모두가 모였다. 페어리들과 인간들이 함께 밭 주위에 섰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지켜보았다. 타이타니아가 첫 열매를 땄다. 작은 토마토였다. 손바닥에 올려놓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붉고 탱탱했다. 햇빛을 받아 윤기가 흘렀다. 그녀는 그것을 높이 들어 올렸다. 햇빛이 토마토를 투과하며 루비처럼 빛났다. 과육 속의 씨앗까지 비쳐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베어 물었다. 과즙이 터져 나왔다. 입안에 달콤함이 퍼졌다. 생명의 맛이었다. 희망의 맛이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울면서 웃었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함성이 울려 퍼졌다. 페어리들이 서로를 껴안았다. 인간들이 손을 맞잡았다.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그것은 희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가능해지는 순간이었다. 죽은 땅에서 생명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또한 루미나가 이제 걸을 수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지만 날 수도 있었다. 날개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검은 흔적이 여전히 날개 끝을 따라 번져 있었다. 마치 화상 자국처럼 보였다. 하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의사들은 곧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타이타니아는 정화된 들판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고 그녀의 긴 은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하늘은 맑았으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은 지평선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아직 정화되지 않은 회색 땅들이 저 멀리까지 뻗어 있었으며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를 상기시켰다.
그때 하늘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작은 점 하나가 햇빛을 받으며 반짝였고 그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타이타니아는 손을 이마 위에 올려 햇빛을 가렸으며 그 움직임을 주시했다. 날개였다. 페어리의 날개였고 그 페어리는 루미나였다.
루미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직 불안정했고 날개짓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가끔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원을 그리며 하강했고 바람을 타며 활공했다. 햇빛이 그녀의 날개를 투과하며 무지갯빛을 만들어냈으며 그 빛깔은 보석처럼 찬란했다. 검은 흔적이 날개 끝에 남아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하나의 무늬처럼 보였다. 상처의 증거였지만 동시에 생존의 증거이기도 했다.
타이타니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오랜만에 보는 진심 어린 미소였으며 눈가의 주름까지 함께 움직이는 미소였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고 그 눈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루미나가 점점 가까워졌으며 마침내 땅에 내려앉았다. 착지는 완벽하지 않았고 비틀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서 있었다.
"폐하."
루미나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힘이 있었다.
타이타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루미나를 향해 걸어갔고 그녀를 껴안았다. 강하게 그리고 오래 껴안았다.